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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인싸M] 재키 로빈슨과 배재고의 '야구'‥고통과 슬픔을 '공부'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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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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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인 재키 로빈슨(AP)





미국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매년 4월 15일 모두 '42번'이라는 똑같은 등번호를 달고 경기에 임합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인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가 42번이었고, 모든 선수가 같은 등번호를 달고 경기에 나서는 건 그를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재키 로빈슨은 1947년 4월 15일 흑인 야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경기를 치렀습니다. '재키 로빈슨 데이'의 기원입니다. 그는 당시, 현재 LA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 소속이었습니다.

야구에서마저 인종 차별이 당연하던 시절, 로빈슨은 흑인 야구 리그인 이른바 '니그로 리그'의 스타 플레이어였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 브랜치 리키는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데뷔를 위한 행동에 나섭니다. 그는 새로운 시도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팜 시스템(Farm System)'이라는 마이너리그 육성 체계를 완성하고, 플로리다 스프링캠프도 개척했습니다. 최초로 피칭 머신을 도입하고 타자들이 헬멧을 쓰도록 했습니다. (전훈칠, 『메이저리그, 진심의 기록』)


브랜치 리키 단장이 로빈슨을 영입하는 이유는 3가지였다고 합니다. 옳은 일이라는 점, 리그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점 그리고 승리와 수익까지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답니다. 로빈슨의 메이저리그 데뷔와 그의 업적을 보여주는 영화 <42>'에서 리키 단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달러에는 흑백이 없다. 모든 달러는 녹색이다."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정착하기까지 그는 정말 많은 차별과 난관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관중들은 그에게 오물을 던졌고, 낮 경기였는데 상대팀이 조명탑 고장을 이유로 경기를 취소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흑인이 야구 경기에 출전한다는 이유로 경찰이 출동해 감독을 체포하겠다고 해 로빈슨이 경기에서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로빈슨이 타석에 들어서면 위협구를 던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상대팀 주자들은 베이스 대신 1루수였던 로빈슨의 발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하지만 로빈은 1949년 타격왕에 올랐고, 최우수선수로 선정됐습니다. 1955년에는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전훈칠, 『메이저리그, 진심의 기록』)

다른 모든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야구 역시 '차별 극복'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재키 로빈슨이 온갖 박해를 이겨내고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유색 인종 선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박찬호도, 류현진도, 이정후도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를 밟을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야구는 '가장 인생과 비슷한 스포츠'라고 합니다. 우선 야구는 '실패'를 기본으로 하는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야구에서 10번의 타격 기회 중에 3번 안타를 치면 '3할 타자', 즉 강타자로 분류됩니다. 최소한 7번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야 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좌절과 실수를 겪으며 성장하는 우리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둘째, 야구에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포수인 요기 베라가 1973년 뉴욕 메츠 감독 시절 한 말입니다. 야구는 콜드 게임이거나 아주 특수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면, 무조건 9회까지 치러져야 합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 역시, 부서지고 깨지더라도 결국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그래서 우리 인생과 너무 비슷하다는 야구의 특성을 일러 줍니다.

셋째, 야구는 1루와 2루, 3루를 돌아 결국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게임입니다. 야구의 형식은 온갖 어려움을 겪은 뒤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이 세상을 빈손으로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빼닮았습니다.

넷째, 야구는 단체 운동입니다. 투수가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이 점수를 내지 않으면 이길 수 없고, 야수들이 아무리 수비를 잘해도 투수가 점수를 내주면 결국 지는 경기입니다. 각각 다른 역할을 맡고 있지만, 공동체 안에서 서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을 야구는 여실히 보여줍니다.


지난달 29일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광주일고와 배재고의 경기가 일어난 사건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배재고 야구 선수들은 사태 발생 직후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고교 3학년 선수들은 불과 몇 개월 뒤면 대학이나 프로야구 등 사회생활을 하는 성년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이지만 거의 어른이 다 된 인격체들입니다. 만일 이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언동이 어떤 뜻인지 몰랐다면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우리 교육 체계가 학생들을 제대로 된 인격체로 길러내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알고도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이는 더욱 참담한 일입니다. 야구대회는 공적인 행사입니다. 배재고 선수들은 140년 역사의 명문 고교 구성원을 대표해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에 나선 것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알고도 광주민주화운동과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언동을 했다면 이는 너무도 참혹하고 몸서리쳐지는 일입니다.


교육 현장의 교사들이 인식하고 있는 학생들의 '극우화' 현상은 이미 심각한 상태를 넘어섰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는 지난 7일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사 1천109명을 대상으로 한 '혐오·역사 왜곡 표현 인식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는 전체 응답자의 89.3%에 달했습니다. 직접 목격이 73.9%, 전해 들은 경우가 15.4%였습니다.

교사가 혐오 표현을 한 학생을 직접 목격한 비율은 중학교가 81.7%로 초등학교(68.4%)·고등학교(68.5%)에 비해 높았습니다. 혐오 표현의 유형을 보면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 조롱'이 88.9%로 가장 많았습니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혐오와 차별'(86.8%), '세대·직업·계층 비하'(81.8%), '역사적 사건 왜곡·희화화'(80.5%)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교사들은 이번 배재고 사태를 일부 학생의 비행이 아닌 청소년 사이에 퍼진 '혐오의 놀이화'가 낳은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특정 학생들만의 우발적 일탈로 보기 어렵고, 온라인 혐오 문화 확산과 연결해 봐야 한다'(88.4%)는 응답이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개별 사건에 가깝다'(7.5%)는 응답보다 10배 이상 많았습니다. 배재고 사태의 원인으로는 '온라인 혐오 콘텐츠와 커뮤니티 문화의 확산'(94.0%)을 가장 많이 지목했고 그다음이 '정치권·언론의 혐오와 조롱의 언어'(74.4%),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민원 부담으로 인한 쟁점 교육 위축'(62.0%) 순이었습니다.

전교조가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올해 1월 6일까지 전국 초·중·고 교사 177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도 충격적입니다. 교사들은 '학교와 교실에서 극우화된 혐오 표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9.8%가 '심각하다'는 취지로 응답했습니다. 특히 '매우 심각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61%나 됐고, '심각하다'는 답도 28.8%였습니다.

'2024년 12·3 내란 이후 학생들 사이에서 극우화된 혐오 표현을 하는 학생이 증가했다고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는 대답이 42.4%, '그렇다'는 응답이 29.4%였습니다. 70%가 넘는 교사들이 12·3 내란 이후 학생들의 극우화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극우 혐오 표현 발생 시 직접 대응에 어려움을 느꼈다'는 교사도 75.2%에 달했습니다. 이들 중 59.9%는 '실질적 조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의 잘못된 인식과 행위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번 사태는 진상 조사와 책임자 징계로 끝낼 일이 아닙니다. 우선 배재고 선수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철저히 훈육해야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는 말에 분노하고 개탄하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이들은 야구 선수이기에 앞서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들이며, 한국 야구,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소중한 인재들입니다. 그렇기에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정확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게 교육자와 어른들의 책무입니다. 자신들이 도대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진심으로 뉘우치고 야구협회와 학교, 시교육청 등의 징계가 비로소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둘째, 혹시 다른 경기에서도 이런 혐오 언동과 조롱이 있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다른 경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없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있었다면 끝까지 밝혀, 응당한 책임을 묻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셋째, 배재고와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사건의 진상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극우적 생각과 품성을 지니게 됐는지 그 근본적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사실 우리 청소년들이 극우적 세계관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룬 문화적 성취, 나아가 보수와 진보가 함께 이룩한 경제적 번영을 좀 먹을 커다란 위험 요소입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남을 괴롭히고 조롱하는 일을 명절 윷놀이 정도로 여긴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이번 기회에 왜 우리의 소중한 아들, 딸들이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 그 경로를 근본부터 밝히고 파헤쳐야 합니다. 교육부는 학교와 교육청의 조사를 바탕으로 근본적 대책을 세우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장해야 합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함께 노력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넷째, 혐오가 또 다른 혐오를 낳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극우적 혐오라는 괴물과 싸우기 위해 또 하나의 괴물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가진 지혜와 역량을 모두 쏟아부어야 합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도조 히데키로 대표되는 극우적 사상이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왔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담론 구조가 조롱과 혐오에 물들지 않도록 노력하고, 선을 넘는 거친 말과 가짜 뉴스는 체계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선을 넘는 언동은 형사 처벌을 해서라도 막아내고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꼭 만들어야 합니다.


신형철은 그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통의 공감은 일종의 능력인데, 그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한심한 한계다. 경험한 만큼만, 느껴본 만큼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고통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어쩌면 이번 배재고 사태는, 우리 청소년들의 극우화 경향은 그들이 '고통과 슬픔'을 공부할 기회가 없어서 일어난 일인지도 모릅니다.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경쟁과 성공의 길'만 보여줄 뿐,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언제든 인생에서 겪어야 할 '고통과 슬픔'을 바라볼 기회를 주지 않아서 발생한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배재고 학생들의 '조롱할 자유'가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와 가족들의 피와 눈물과 고통과 슬픔 위에 성립한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생긴 일인지도 모릅니다. 배재고가 학생들에게 이승만은 가르쳤지만, 배재학당 출신의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시인 김소월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테드 윌리엄스, 조 디마지오, 밥 펠러, 행크 그린버그 등 당대의 메이저리그 스타 플레이어들은 2차 대전에 참전해 나치즘과 파시즘에 맞섰습니다. 재키 로빈슨 역시 미국 육군의 전차부대 장교로 2차 대전을 치렀습니다.

재키 로빈슨은 자신을 포함한 유색 인종과 약자, 소수자들을 위해 야구장에서 오물을 뒤집어쓰고, 욕설을 참으며, 모욕을 견뎠습니다. 하지만 배재고 선수들은 야구장에서 재키 로빈슨을 혐오하고 조롱한 사람들과 같은 언행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로빈슨의 야구와 배재고의 야구는 다릅니다. 로빈슨과 배재고 선수들은 '같이' 야구 선수이지만 '같은' 야구 선수는 아닙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약 80년 전 재키 로빈슨을 조롱한 사람들과 다름없는 행위를 했다는 건 너무 참담하고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이렇게 만든 더 크고 근본적인 책임은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갖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젊은이들이 다른 사람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품성을 갖추도록 돕고 격려해야 합니다. 가슴 아픈 이번 사건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합니다.

이제 젊은 세대가 '고통과 슬픔'을 공부하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번 배재고 사태는 청소년 극우화라는 큰 물결이 비로소 기성세대의 눈에 구체적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심은 극우화의 씨앗은, 놀이의 가면을 쓰고 이미 청소년들의 머리와 가슴에 깊이 뿌리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지금도 소중한 우리 아들과 딸들의 가슴에서 싹을 틔우고 줄기와 잎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진실을 뿌리고, 정의를 거둬들이도록 하려면, 과연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고 널리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뉴스인사이트팀 전영우 논설위원》

전영우


https://n.news.naver.com/article/214/0001510819?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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