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논란과 맞물려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던 ‘배재고 일’이 있고 나서 교실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죠. 왜 우리를 이렇게까지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요.”
8일 오전 광주 북구 광주제일고 등굣길.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학교는 겉으로 보기엔 평소의 아침을 되찾은 듯했다. 지난 6일 배재고 야구부 학생 선수 36명 전원과 학부모, 교사 등 80여 명이 5·18 조롱 응원 논란과 관련, 사과 방문을 한 직후였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의 모습도 전국적 관심이 쏠리기 전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배재고 응원 논란 이후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는 취재진 질문이 나오자 분위기는 금세 달라졌다.
학생들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나섰다가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다”, “인터뷰는 좀 어렵다”며 손사래쳤다. 한 학생은 “괜히 또 기사 나가면 ‘광주 사람들 욕하는’ 댓글 달리고 그러지 않느냐”며 말을 아꼈다.
한참을 망설이던 한 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사실 응원 구호보다 댓글이 더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사건 이후, 기사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댓글에는 “역시 전라도” “홍어공화국” “왜 아직도 5·18 이야기를 하느냐”는 식의 조롱과 비난이 이어졌다는 거다. 학생들은 움츠러들고 위축돼 있었다.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지역과 고향, 역사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낯설고 불편했다고 입을 모았다.
▲움츠러들고 위축된 광주 학생들
광주일고 학생들 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광주 지역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17)양은 “스타벅스 탱크데이 마케팅이나 배재고 응원 논란 기사 댓글을 보면 광주일고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뜬금없이 5·18과 전라도를 조롱하는 댓글이 너무 많았다”며 “광주일고 학생들이, 그리고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욕설을 들어야 하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화도 나고 반박하고 싶었는데 비슷한 말을 너무 오래, 많이 접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또 시작됐구나’ 싶을 때도 있다”며 “상관도 없는 광주 사람 전체를 욕하는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 그게 더 무섭다”고 털어놨다.
친구 최모(17)양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최양은 “인스타그램 릴스나 유튜브 숏츠에서 콘텐츠를 업로드 하는 사람이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내용과 상관없이 ‘전라도는 뒤통수를 잘 친다’는 댓글이 달리는 걸 자주 봤다”며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자주 보다 보니 ‘우리가 정말 그런가’, ‘내가 그런가’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고 했다. 그의 넋두리는 이어졌다.
“큰 잘못 안 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어떻게 살든 평생 꼬리표처럼 ‘전라도’가 따라붙는다고 생각하면 허탈하다. 화가 나기보다 그냥 체념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뭘 해도 누군가는 ‘전라도라서 그렇다’고 말할 것 아닌가. 억울한데 설명할 방법도 없고 설명할 의지도 없다.”
5·18과 전라도를 향한 혐오 표현은 특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5·18 46주년에 터진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이 대표적이다. 당시 관련 기사 댓글에는 “전라도나 5·18 기사 좀 안 보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홍어공화국”, “광주는 북한으로 편입됐으면 좋겠다”는 글들이 잇따랐다.
배재고 조롱 응원 논란 이후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배재고 학생들은 이번 일을 경험으로 사회에 나가면 절대 전라도 출신과는 엮이지 말라”, “전라도 사람은 믿지 않는다”, “5·18 폭도들”, “전라도는 뒤통수를 잘 친다” 등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은 곧바로 지역 전체를 향한 혐오와 비하로 번졌다. 세대를 걸쳐 누적되고 반복된 혐오는 누군가에게는 체념이 됐고, 누군가에게는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증명해야 하는 경험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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