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한겨레 리뷰] 한국 장르 영화의 새로운 경지이자 희망 ‘호프’
1,065 5
2026.07.07 11:31
1,065 5
IfTSQC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15일 개봉한다. 전작 ‘곡성’이 나온 지 10년 하고도 두달 만이다.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 도착했다.


‘곡성’의 엉클어지고 불길하며 바닥을 알기 힘든 심연의 세계를 기대했다면 ‘호프’는 의외의 작품일 수도 있다. ‘호프’ 역시 불길한 기운으로 출발하지만 ‘추격자’ ‘황해’ ‘곡성’의 세계보다 명료하다. 어두운 밤도, 시야를 흐리는 폭우도 없는, 한낮의 ‘쨍한 불길함’이다. 쨍한 태양 아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겁나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2시간36분 동안 쫓거나 쫓기기기만 하는데도 단 한순간도 몰입을 흩뜨리지 않는다. 나 감독은 일정 수준에 오른 뒤 지지부진 횡보를 거듭했던 한국 액션스릴러 영화를 솟구치듯 도약시켰다. 지금까지 한국 장르 대작의 목표가 할리우드 수준을 따라잡는 것이었다면, ‘호프’는 이를 장쾌하게 앞질러 나가는 케이(K)무비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나홍진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두 축은 ‘호프’에서도 이어진다. 한없이 고요해 보이는 비무장지대의 호포항 마을. 파출소장 범석(황정민)은 호랑이가 나타난 것 같다는 마을 청년들의 제보를 받고 현장으로 간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둑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황소의 몸피엔 처참하게 긁힌 상처가 가득하다. 청년들은 괴물을 잡겠다며 산으로 떠나고 범석은 읍내로 향하는데, 이미 읍내는 초토화돼 있고 어디선가 공룡의 포효와 같은 소리가 들린다.



‘호프’의 초반 50분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을 쫓는 범석의 동선을 따라간다. 무너진 낡은 건물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섬뜩한 포효와 벼락처럼 떨어지는 자전거와 가구…. 범석은 괴물을 쫓으면서도 기실 그 압도적인 힘에 쫓겨 다닌다. 실체 없는 상대와 겨루는 원맨쇼지만 긴장을 조여가는 연출 솜씨와 황정민의 연기력,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피부로 느껴질 만큼 생생하게 잡아내는 촬영 덕에 팽팽한 긴장감이 한순간도 풀어지지 않는다.


이후 드러나는 괴물의 모습과 범석을 돕기 위해 나타나는 순경 성애(정호연)은 등장은 드라마의 흐름을 긴장에서 폭주로 바꿔놓는다. 범석은 성애가 전속력으로 모는 경찰차에서 장총을 쏘며 본격적으로 괴물과 싸우기 시작한다. 이처럼 ‘호프’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자리를 계속 바꿔가며 관객의 심장을 조인다. 마을 청년들과 숲속으로 간 성기(조인성)도 마찬가지다. 성기는 자신만만하게 숲속을 휘젓지만, 어느 순간 친구들이 무참하게 도륙당하면서 ‘진격의 거인’을 닮은 괴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호프’의 극적 재미를 돋우는 중요한 요소는 카메라다. 극 초반 가을 들판의 쨍하면서도 황량한 풍경 속에 불길한 기운을 실어 담던 카메라는 뒤로 갈수록 액션의 속도감과 쾌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특히 드론의 부감으로 잡아낸 숲속 추격전은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으로 무너지는 나무들과 물결처럼 일어나는 흙먼지까지 시각적 경이를 선사한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이뤄낸 놀라운 성취다.



자동차와 총격 액션, 에스에프(SF)와 서부극까지 망라하는 장르적 재미가 있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농촌 스릴러’를 표방했다면, ‘호프’는 명백히 ‘시골 에스에프’다.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것들이 마구 뒤섞이며 한국적인 블랙코미디가 긴장과 속도의 사이사이를 파고든다. 동네 노인들이 총기로 중무장하고 괴물과 싸우러 나가면서 범석을 애 취급하며 새참처럼 감자를 권하고, 괴물을 본 노인은 중요한 목격담을 진술하며 당시 설사와 싸웠던 힘겨움에 대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신스틸러 역할을 하는 이 노인은 한때 코미디 연기로 안방극장을 누볐던 임현식이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칸국제영화제 때 지적됐던 컴퓨터그래픽(CG)은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어색한 부분은 남아있다. 또 우주전쟁급으로 스토리가 급전환하며 극이 새로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엔딩에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전체적인 완성도와 매력에 비하면 미미하다. 칸에서 공개된 버전보다 상영시간이 4분 줄었는데, 괴물의 공격 이유에 대한 설명은 좀 더 친절해졌고 후반부 반복되는 추격전은 좀 더 압축해 재미와 완성도가 높아졌다. 극장에서 안 보면 손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812979

댓글 5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필사하기 좋은 문장과 사랑스러운 스누피를 한 권에 《하루 한 장 필사 노트》 피너츠 에디션! 387 00:05 12,321
공지 [🚨필독🚨] 로그인 보안 강화📢시크릿모드 사용자들 필독 (사용안함 옵션 추가)📢 07.13 729,329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832,557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4,260,091
공지 ◤더쿠 이용 규칙◢ [260812 기사뉴스 저작권법 침해 강력 제재] 20.04.29 37,386,993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292,909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2 21.08.23 8,727,854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20.09.29 7,622,807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52 20.05.17 8,860,460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4 20.04.30 8,728,83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타회원 글/댓글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767,299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42123 기사/뉴스 [단독] 이세돌vs알파고, 리벤지 매치 열리나…KBS 손잡고 '신의 한 수' 07:39 76
3142122 기사/뉴스 "분유 타고 트림까지"…갓난아기 영화관 동반, '민폐' 뒤 진짜 문제 있다 1 07:39 485
3142121 유머 웃고 싶은 덬들 들어와봐ㅋㅋㅋㅋㅋㅋ 2 07:33 408
3142120 이슈 22년 전 오늘 발매된_ "Brand New" 7 07:30 254
3142119 기사/뉴스 연예인 악플 쓰고 트위터 계정 지웠는데…'해외라 못 잡는다'는 말, 정말일까? 3 07:23 704
3142118 유머 썸네일이 시선강탈하는 EBS 고양이를 부탁해 물에 미친 고양이편 4 07:14 2,130
3142117 이슈 눈물 흘렸지? 흘렸어야돼 1 06:52 2,472
3142116 유머 신뢰지만 여기 김애김씨 계신가요? 기절촉붕하겠네 아기저그로 하지마세요 45 06:48 4,065
3142115 유머 챗 GPT에게 “네가 나에대해 몰래 알게 된 걸 말해줘.” 라고 물어봤다 22 06:26 6,667
3142114 이슈 번개장터 판매자가 받은 취소 요청 메세지.... 13 06:21 7,612
3142113 기사/뉴스 달리던 차에서 '내동댕이'‥"너 납치된 거야" 태국 비상 3 06:14 3,079
3142112 이슈 미국, 영국 잉글랜드&웨일즈에서 가장 흔한 아기 이름 TOP50 (2025, 2015, 2005) 13 05:46 2,562
3142111 이슈 [k리그] 한 명이 없어도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중계진 괴성) 2 05:44 1,288
3142110 정보 웨이크섬 근해에서 발달 중인 열대 저기압으로 9번째 태풍 발생으로 「태풍 22호 아타우」 가능성 05:39 1,286
3142109 유머 요리가 재밌어지는 종이호일 아이디어 13 05:08 5,161
3142108 유머 이 표지 아는 사람? 12 05:01 2,686
3142107 유머 세대차이 느껴지는 요즘 급식들 선생님룩 1 04:54 4,415
3142106 유머 새벽에 보면 등골 서늘해지는 괴담 및 소름썰 모음 115편 4 04:44 476
3142105 유머 우린 훔친거 없이 순수체급 9 04:40 3,568
3142104 유머 외국에서 화제된 여자 싱크로나이즈 하이다이빙 중국페어의 입수영상 8 04:34 4,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