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15일 개봉한다. 전작 ‘곡성’이 나온 지 10년 하고도 두달 만이다. 기다린 시간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 도착했다.
‘곡성’의 엉클어지고 불길하며 바닥을 알기 힘든 심연의 세계를 기대했다면 ‘호프’는 의외의 작품일 수도 있다. ‘호프’ 역시 불길한 기운으로 출발하지만 ‘추격자’ ‘황해’ ‘곡성’의 세계보다 명료하다. 어두운 밤도, 시야를 흐리는 폭우도 없는, 한낮의 ‘쨍한 불길함’이다. 쨍한 태양 아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겁나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2시간36분 동안 쫓거나 쫓기기기만 하는데도 단 한순간도 몰입을 흩뜨리지 않는다. 나 감독은 일정 수준에 오른 뒤 지지부진 횡보를 거듭했던 한국 액션스릴러 영화를 솟구치듯 도약시켰다. 지금까지 한국 장르 대작의 목표가 할리우드 수준을 따라잡는 것이었다면, ‘호프’는 이를 장쾌하게 앞질러 나가는 케이(K)무비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나홍진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두 축은 ‘호프’에서도 이어진다. 한없이 고요해 보이는 비무장지대의 호포항 마을. 파출소장 범석(황정민)은 호랑이가 나타난 것 같다는 마을 청년들의 제보를 받고 현장으로 간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둑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황소의 몸피엔 처참하게 긁힌 상처가 가득하다. 청년들은 괴물을 잡겠다며 산으로 떠나고 범석은 읍내로 향하는데, 이미 읍내는 초토화돼 있고 어디선가 공룡의 포효와 같은 소리가 들린다.
‘호프’의 초반 50분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을 쫓는 범석의 동선을 따라간다. 무너진 낡은 건물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섬뜩한 포효와 벼락처럼 떨어지는 자전거와 가구…. 범석은 괴물을 쫓으면서도 기실 그 압도적인 힘에 쫓겨 다닌다. 실체 없는 상대와 겨루는 원맨쇼지만 긴장을 조여가는 연출 솜씨와 황정민의 연기력,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피부로 느껴질 만큼 생생하게 잡아내는 촬영 덕에 팽팽한 긴장감이 한순간도 풀어지지 않는다.
이후 드러나는 괴물의 모습과 범석을 돕기 위해 나타나는 순경 성애(정호연)은 등장은 드라마의 흐름을 긴장에서 폭주로 바꿔놓는다. 범석은 성애가 전속력으로 모는 경찰차에서 장총을 쏘며 본격적으로 괴물과 싸우기 시작한다. 이처럼 ‘호프’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자리를 계속 바꿔가며 관객의 심장을 조인다. 마을 청년들과 숲속으로 간 성기(조인성)도 마찬가지다. 성기는 자신만만하게 숲속을 휘젓지만, 어느 순간 친구들이 무참하게 도륙당하면서 ‘진격의 거인’을 닮은 괴물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호프’의 극적 재미를 돋우는 중요한 요소는 카메라다. 극 초반 가을 들판의 쨍하면서도 황량한 풍경 속에 불길한 기운을 실어 담던 카메라는 뒤로 갈수록 액션의 속도감과 쾌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특히 드론의 부감으로 잡아낸 숲속 추격전은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으로 무너지는 나무들과 물결처럼 일어나는 흙먼지까지 시각적 경이를 선사한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이뤄낸 놀라운 성취다.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칸국제영화제 때 지적됐던 컴퓨터그래픽(CG)은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어색한 부분은 남아있다. 또 우주전쟁급으로 스토리가 급전환하며 극이 새로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엔딩에 고개를 갸웃거릴 만하다. 하지만 이런 단점은 전체적인 완성도와 매력에 비하면 미미하다. 칸에서 공개된 버전보다 상영시간이 4분 줄었는데, 괴물의 공격 이유에 대한 설명은 좀 더 친절해졌고 후반부 반복되는 추격전은 좀 더 압축해 재미와 완성도가 높아졌다. 극장에서 안 보면 손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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