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지역 감정'이 아니라 '전라도 혐오증'이라는 정신병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유시민의 글.txt
2,259 21
2026.07.03 17:23
2,259 21

우리나라에서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지역감정'이 아니라 다른지역 사람들이 모두 전라도 사람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감정'의 수준을 넘어서 일종의 '편집증' 단계에 이른 '질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지역 감정' 이라는 말 대신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단어를 써야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겪은 대로 말하자면 사람들의 전라도 혐오감은 '전라도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형성된다. 주로 서울에 살거나 살다온 가족과 친지들에게서 듣는 좋지 못한 이야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무개 집주인이 전세금을 띠묵었는데 전라도 사람이라 카더만' 이라든가, '아무개네 가게 경리직원이 돈을 빼돌리다가 들켰는데 전라도 어디 여자라 카더라'는 식의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화재로 오르면, 사실 여부나 그런 못된 짓을 한 '바로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만 부각된다.

 

 

 

'전라도 혐오증' 의 원인은 딱 하나, 전라도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돈 없고 '빽' 없고 배운 것 없이 객지에 가서 그 사회의 맨 밑바닥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든 특정한 인종 집단이든 멸시를 받게 되어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우리나라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목욕탕 때밀이,작부,깡패,도둑놈,식모,사기꾼,노가다,노점상 등은 거의 예외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했다. 시나리오 작가와 프로듀서가 전라도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실제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대학 신입생이던 1978년 여름부터 나는 구로공단 노동 야학에서 선생노릇을 했는데, '호남선 완행열차를 용산역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타면 구로공단 행이요, 길을 건너서 타면 청량리 588' 이라는 말을 들은 것이 그맘때였다. 야학 학생이 약 40명 쯤 되었는데 거의 다 섬유,봉제,전자 공장에 다니는 열일곱에서 스물 사이의 내 또래 전라도 처녀들이었다.

 

 

학생들의 신상자료에는 월 평균 급여액이 나와 있었는데 매주 60시간 정도 일한 대가가 2만5천원 정도였다. 당시 학교 기숙사에 식비로 내는 돈이 월 2만1천원, 신림9동 골목의 2인 1실 하숙비가 월 3만 5천원 이었고, 나는 고2짜리 남자아이에게 매주 여섯시간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일로 월 6만원을 버는 참이었다.

 

 

서울에 사는 경상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 출신도 마찬가지이지만) 보는 전라도 사람들은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행색이 초라하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다투고, 대낮에도 술먹고 다니고..., 한마디로 말해서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향에 가서 '그런 전라도 사람' 들에 대한 험담을 주저없이 한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에 뿌리박고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어떤지는 전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자기네가 본 전라도 사람들이 왜 그렇게 가난한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나는 전라도 사람들의 '상대적 빈곤'이 박정희 시대에 진행된 지역적 불균등 발전의 결과라고 본다. 알다시피 80년대까지 대한민국의 공장이라는 공장은 거의 모두 수도권과 경남북에 몰려 있었다. 따라서 경기도와 경남북의 시골 사람들은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 수가 없는 경우에도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가까운 지역 공장에서 일하다가 유사사에는 언제든 고향집에 갈 수 있었고, 서울까지 가는 것은 확실한 일자리가 있는 경우뿐이었다.

 

 

 

'서울의 전라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전라도의 지세' 도 아니고 '전라도 사람의 타고난 근성'도 아닌 박정희 정권의 과격한 농촌 해체 정책과 경상도 위주의 불균등한 산업유치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라도 혐오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특히 경상도 사람에게는 치료하기가 매우 어려운 정신적인 '질병'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물론 다 그런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기네가 30년 동안 대통령을 배출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 대통령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피해를 본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해 하기는 커녕 그들을 싫어하고 업신여긴다.

 

 

 

 

장기간에 걸쳐 반복해서, 주위의 충고와 권유를 무시하면서,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보통 '저 사람 제정신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른 지역사람이라면 모를까, 경상도 사람이 스스로 '전라도 혐오증' 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으면서, 또 그것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기까지 한다면, 이것을 '정신병' 말고 다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전라도에도 요즘에는 공단이 생기고 있다. 중국경제가 번창하고 서해안 고속도로가 다 뚤리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전라도 혐오증'이 치유될 수 없다. 달동네에 몰려 사는 '서울 전라도 사람들'이 호화 빌라와 고급 아파트에 사는 '서울 경상도 사람들' 만큼 잘 살게 되어야 비로서 이 질병의 '발병 원인'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제의 본질을 덮어둔 채 막연히 '우리 모두 지역감정을 청산합시다!'하고 외치는 분들께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주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런 개탄 보다는 속마음을 열고 소근소근 조용하고 끈기있게 토론하고, 팔도의 시민들이 저마다 다른 지역을 오가면서 그 곳의 실정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특히 전라도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호교류를 지원하는 것이 당장 효과가 눈에 보이지는 않겠지만 문제 해결에 차근차근 다가서는 바른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라도 혐오증' 이라는 이 '집단적 정신병' 을 그 자체로서는 별로 해롭지 않은 '지역 감정' 수준으로 완화하는 데만도 몇 십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유시민

댓글 2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영화이벤트] <호프> 개봉 전 시사회 초대 이벤트 901 07.06 30,124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739,729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210,20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641,522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474,979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80,884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0 21.08.23 8,643,283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20.09.29 7,544,317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39 20.05.17 8,764,395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51,655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660,090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11244 이슈 와...방금 엄청난거 봄... 어떤 면접 프로그램이었는데 면접관이 탁자 위에 종이컵 1,000개를 쫙 깔아놓고 "자, 여기 1,000잔의 물이 있음. 이 중 딱 한 잔만 설탕물입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그 한잔을 찾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07:16 190
3111243 기사/뉴스 속보] 베네수엘라 지진 사망자 3,685명으로 증가…이재민 17,900명 07:09 160
3111242 기사/뉴스 속보]호르무즈 케슘 섬, 반다르아바스에서도 폭발음들 들려 1 07:08 529
3111241 기사/뉴스 "허남준 너무 착한 사람"…신예은, 대세 반열 오른 선배에 "덩달아 기분 좋아" ('섬보이')[인터뷰] 07:07 317
3111240 기사/뉴스 방탄소년단 정국, “‘사이버 펑크’ 데이비드 아우라” 넷플릭스도 인정 5 06:58 952
3111239 유머 산책 할 때 이 정도 리액션은 필수 06:55 510
3111238 정보 신한플러스/플레이 정답 3 06:54 123
3111237 기사/뉴스 [속보] 미군 "이란 겨냥해 강력한 공습 시작" 29 06:46 2,915
3111236 이슈 뉴욕에서 리모델링중인 건물이 붕괴조짐이 보여 주변 봉쇄 및 대피 5 06:41 2,828
3111235 유머 혼자가 되었지만 의미있게 살려는 디시인 22 06:31 3,751
3111234 기사/뉴스 "엄마가 가라고 했어요"…초등생, 복싱장에 몰리는 이유 [발굴단] 4 06:23 3,070
3111233 유머 손절한 친구 생일이라서 기프티콘 보냈는데.jpg 31 06:23 4,794
3111232 유머 BMW 닦기만 열심히 한 브라이언 4 06:22 1,255
3111231 이슈 한성깔 한다는 바다거북 2 06:17 720
3111230 기사/뉴스 "최민수, 스태프 밥 안 먹였다고 화내…다 먹을 때까지 촬영 안 한다고" 미담 공개 10 06:17 2,300
3111229 유머 산책하다 아기고양이 만난 강아지 반응 2 06:16 1,029
3111228 이슈 월드컵 경기 후 이집트가 주장하고있는 오심 장면 3 06:15 1,862
3111227 이슈 등산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포켓몬 GO 3 06:05 1,164
3111226 유머 골이다 vs 노골이다 의견이 분분한 상황 8 06:02 2,074
3111225 이슈 이렇게 말하는걸 들었다면 만원이다? 9만원이다??? 9 05:55 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