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진짜 문제는 시스템의 설계자들이 강사에게만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시공간의 본질은 ‘돌봄’이면서, 강사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평가는 ‘교육’의 잣대를 들이댄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으면 수업의 유효성 자체가 부정당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야 하고, 그것은 시각적으로 그럴듯해야 하며, 매번 참신해야 한다.
1,682 8
2026.06.30 15:21
1,682 8

cMWrWq

[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초등 저학년 대상의 맞춤형 미술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이 끝나면 교실을 청소한다. 책상 밖으로 넘어간 색연필과 물감의 흔적을 닦아내고, 바닥에 떨어진 풀과 가위, 색종이 조각을 줍는다. 아이들이 쓰다 남은 재료들을 색깔별로 분류하고 정리한다. 공간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놓고 나서야 그날의 노동이 끝난다. 문을 나서며 드는 생각은 매번 비슷하다. ‘나는 지금 무엇을 수행하고 있는 걸까.’

작년부터 초등 저학년 대상의 돌봄 교실과 맞춤형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돌봄 강사’라는 직함은 지독히 직관적이다. 말 그대로 아이들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 즉 가정이 공백인 시간 동안 아이들을 보호하고 예속하는 일이다.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개인 작업을 병행하는 동안, 여러 회의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결과적으로 돌봄으로 귀결되지만, 그 구조적 자리에 ‘수업’과 ‘교육’이라는 거창한 명목이 얹힐 때, 그 내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모순적인 순간들을 마주한다.

학교라는 공교육 시스템에 강사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잘 짜인 수업 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대상의 연령별 발달 단계와 인지 능력을 고려해 1년치 차시별 커리큘럼을 설계해야 하고, 매 수업마다 명확한 교육 목표를 도출해야 한다. 현장에 투입되면 결과물을 아카이빙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학부모 참관 하에 공개수업을 진행하며 교육 서비스 공급자로서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 제도적 요구 사항들은 완벽히 ‘교육’의 프레임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교실이라는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은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수업 중간에 학생이 하나둘 이탈한다. 사설 학원 스케줄에 맞춰 가방을 챙기는 아이, 콘텐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거부하는 아이, 또래와 장난을 치느라 도화지를 방치하는 아이. 이 파편화된 시간 속에서 연속성 있는 ‘수업의 흐름’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아동 개인이 비난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은 오히려 이 공간과 시간의 본질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규 교육과정이 끝난 뒤, 보호자가 올 때까지 빈 시간. 그 빈 공간을 임시로 채우기 위해 미술 강사라는 흥미로운 매개자가 존재할 뿐이다. 학습자의 문제도, 학부모나 학교의 문제도 아니다. 이 자리 자체가 처음부터 그렇게 ‘돌봄의 외주화’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시스템의 설계자들이 강사에게만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시공간의 본질은 ‘돌봄’이면서, 강사에게 요구하는 책임과 평가는 ‘교육’의 잣대를 들이댄다. 가시적인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으면 수업의 유효성 자체가 부정당한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해야 하고, 그것은 시각적으로 그럴듯해야 하며, 매번 참신해야 한다. 이전 수업의 경험을 축적하여 내면화하는 ‘성장 중심 교육’은 이 단절된 구조 안에서 작동하지 못한다. 결국 강사는 매주, 매달 가시적인 성과(결과물)를 급조해 내는 단기 생산자로 전락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착취적인 결과물들은 다시 나의 포트폴리오가 되어 내년 면접장의 평가지표가 된다. 생존을 위해 시스템의 모순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해야 하는 굴레에 갇힌 것이다.

(중략)

 

그럼에도 이 모순적인 노동을 중단하지 못하는 동력이 있다면, 그것은 아동들이 가끔 제도적 설계를 벗어나는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기획된 커리큘럼이 완전히 무너진 날, 무력감에 잠겨 있던 아이가 갑자기 도화지 한가득 자신의 내면세계를 폭발적으로 쏟아낼 때가 있다. 그 해방의 순간은 정형화된 교육 목표와 무관하게 찾아온다. 


https://www.munwhamagazi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07

댓글 8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라네즈X더쿠🩶여름에도 매끈보송한 피부 완성! 네오 쿠션 더 매트 체험단 모집(50인) 476 07.01 48,851
공지 이미지 서버 작업 관련 안내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경우) 07.01 18,235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656,776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3,093,712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558,199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329,878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73,651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0 21.08.23 8,637,226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5 20.09.29 7,539,531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36 20.05.17 8,757,76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45,231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649,120
모든 공지 확인하기()
3107509 기사/뉴스 유아인, 장재현 '뱀피르'로 복귀설 재점화.."아직 확정된 바 없다"[공식] 2 12:28 57
3107508 기사/뉴스 '전참시' 아나운서 박소영, '무한도전 런' 10km 도전…박명수 만나 '성덕' 등극 1 12:27 150
3107507 기사/뉴스 배우 김민하 "2년간 17kg 감량..다이어트 오해 풀고 싶다" 말한 이유(하나 코리아) [인터뷰] 10 12:25 1,132
3107506 이슈 내 강아지가 음악에 반응한다 1 12:24 141
3107505 이슈 배재고 6개월 출전 정지 사실상 경기 하나만 못 나가는 건데 ㅈㄴ호들갑 떠네.twt 14 12:23 1,217
3107504 이슈 비 오는 에딘버러 5 12:22 546
3107503 기사/뉴스 조이·박경혜, 전현무 취향 저격…김신영 깜짝 등장한 '하계 수련회' 현장 (나혼산) 3 12:22 456
3107502 이슈 적중률 개높은 증권사 직원이 알려주는 주식투자 꿀팁 18 12:20 1,332
3107501 이슈 어미 고양이는 강아지 친구가 무해하다는 것을 새끼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15 12:20 1,185
3107500 이슈 배재고 6개월 정지? 사실상 봉황대기 대회 1개 못나가는 거임 25 12:18 1,563
3107499 기사/뉴스 김지민, 학폭 피해자였다 "주동자 기억해…사과 원한다"(이호선의 사이다) 1 12:18 1,661
3107498 이슈 박지성에게 7개월전 질문한 영상. "지도자 생각은 한번도 안하셨어요?" 8 12:17 826
3107497 이슈 인피니트 성규의 팀으로서 솔로로서 앞으로의 꿈은? 4 12:17 186
3107496 이슈 왕홍체험 근황.jpg 20 12:17 1,893
3107495 유머 같은 핏줄 다른 기억ㅋㅋ 1 12:17 338
3107494 기사/뉴스 '한국행 포기' 유승준, 오늘 세 번째 비자발급 소송 재개 21 12:15 935
3107493 기사/뉴스 쌈디 "집에 도둑 들어 복싱 시작→21살 절도범 이름도 기억해" ('인생84') [순간포착] 1 12:13 418
3107492 정보 <전반> 스위스 1 :0 알제리 5 12:13 541
3107491 이슈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2 제발회때 핑크수트 입은 서인국 💕 5 12:11 904
3107490 이슈 "육체 관계를 포함한 친구 관계"를 원하는 비율은, 남성이 29.4%인 반면 15 12:11 2,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