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일간 54만여명이 찾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역대 누적 관객 신기록이다.
하지만 그건 일면일 뿐이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 국내외 미술판 관계자들 사이에서 전례 없는 조롱거리로 전락해 있다. 우선 전시에 쓴 돈의 명분부터 그렇다. 국민 세금으로 조달한 30억원 넘는 예산이 허스트가 주로 20~30년 전 만든 과거 명작들을 다시 띄워주는 전시에 쓰였고, 그중 70%는 상어의 주검 등 대형 설치물 운반 비용으로 들어갔다.
허스트는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세계 현대미술에 큰 파문을 일으킨 혁명아였지만, 이후 급속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2년 영국 테이트모던 회고전에서 생명을 희생시키는 작품 방식을 진부하게 되풀이했고, 201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거창한 규모로 펼친 ‘믿을 수 없는 난파선의 보물들’전 등에서 가짜 명품과 진품을 뒤섞는 사기성 기행을 펼쳐 구설에 올랐다. 경매 시장에 자기 작품을 투매하고, 자기 작품을 주문받아 만드는 공방 작업자에 대한 노동 착취 의혹도 사는 등의 비윤리적인 행태까지 덧붙여져 세계 미술계에서 신뢰를 잃고 뮤지엄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 실제로 서구 미술계에서 그는 이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작가라기보다 과거 미술사의 배경 인물로 정리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충분한 작가 작품 연구를 통해 이미 십몇년 전 서구 미술관에서 정리된 허스트의 작가론이나 작품론과는 다른 차별적 담론을 전시에서 보여줬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석달간 진행된 전시에선 새 담론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담론이 없으니 국내 동물보호단체들이 서울관 정면에 내건 허스트의 동물 학대 작품에 대한 규탄 시위와 항의 설치물에도 미술관 쪽은 일체 대답하지 못했다.
한 중견 큐레이터는 “최근 국외에 나가면 허스트 전시를 왜 한국 국가 미술관에서 하느냐고 물어보는 현지 기획자들이 많았는데, 마땅히 답할 말이 없어 민망하기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https://t.co/HnfSletxF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