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경제가 성장률·실업률 등 주요 지표에서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국민 상당수는 높은 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세 미만 자녀 두 명을 둔 연 소득 13만달러(약 2억원) 수준의 중산층조차 주거비, 건강보험료, 보육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적자 상태에 빠진다는 주장이다.
라엘 브레이너드 전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이사와 로힛 초프라 전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국장은 최근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는 감세와 임금 상승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형편이 나은 가정들조차 높은 물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의 실업률과 지난 1년간 큰 폭으로 상승한 주식시장이 미국인이 체감하는 현실을 가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브레이너드 전 이사와 초프라 전 국장은 8세 미만 자녀 두 명을 포함한 4인 가구의 모형 예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표를 만들었다. 가구의 연 소득은 13만달러로 설정했다. 이는 미국 전체 가구의 중위소득인 약 8만3500달러를 웃돌지만, 4인 가구 소득 분포에서는 정확히 중간에 해당한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4년에는 소액의 여유 자금이 남았다. 올해 들어서는 주거비와 건강보험료, 보육비 등 기본적인 비용만 지불하고도 적자에 빠졌다. 생활비를 제외한 월별 가계수지는 18개월 새 1000달러 이상 줄었다. 비용 상승이 임금 인상 및 감세 혜택을 상쇄하고도 남았다는 주장이다.
생활비 압박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미국인의 약 35%는 식품을 재정 압박의 가장 큰 단일 원인으로 꼽았다.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난 주거비보다 약 15%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응답자의 3분의 2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즉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식료품 중에서도 육류에 대한 부담이 가장 높았다. 두 번째로 많이 선택한 커피 등 음료의 6배에 달하는 비율로 집계됐다. 소고기 가격은 2년 새 약 33% 올랐다. 일주일에 다진 소고기 2파운드(약 900g)를 소비하는 가정을 기준으로 매달 약 10달러를 추가로 지불한 셈이다. 사육두수 감소, 관세 부담, 기생충 위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 원인이다.
가격 부담의 이유는 다양하게 나타났다. 가격 자체가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과 가격 변동성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격 대신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나 수수료, 품질 저하 등으로 인해 상품·서비스 가치가 떨어졌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브레이너드 전 이사와 초프라 전 국장은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식료품과 관련해서 전략적 목적이 없는 관세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치약과 화장지, 기저귀 등에 세금을 부과하는 주들은 과세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슈링크플레이션을 억제할 표시 제도 의무화, 미끼 상품 마케팅 제재 등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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