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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더 이상 ‘아가씨’가 아닌 여자는 …“하던 일을 더 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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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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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와 진경>의 한 장면. MBC 제공

<소라와 진경>의 한 장면. MBC 제공

 

잔혹 동화 <푸른 수염>에서 푸른 수염은 결혼할 때마다 아내가 실종된 수상한 남자다. 하지만 귀족이라는 신분 덕분인지 또다시 어떤 집의 막내딸과 결혼한다. 여자는 결혼 후 푸른 수염의 성에 살면서 열쇠 꾸러미를 하나 받는데, 조건이 있다. “이 성에 있는 모든 방을 다 열어도 좋지만, 지하의 작은 방만은 열지 마시오.” 하지만 여자는 푸른 수염이 자리를 비운 사이 금지된 방을 열고, 방 안에 쌓인 전처들의 시체를 본다. 당황한 여자는 열쇠 꾸러미를 떨어뜨리고, 그때 묻은 피 때문에 푸른 수염에게 방을 연 것을 들키고 만다. 푸른 수염이 여자를 죽이려는 순간, 때마침 달려온 여자의 오빠들이 푸른 수염을 무찌른다. <푸른 수염>은 호기심과 금기에 대한 동화인데, 이쯤에서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는 무슨 금기를 어겼길래 죽임을 당했을까? 아직 목격할 시체가 없는데? 혹시…‘그저 나이 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푸른 수염은 계속 나이를 먹는데, 그 시대의 미혼 여성인 신부들은 언제나 소녀다. 마치 미디어가 조명하는 여성들이 항상 젊은 것처럼. 푸른 수염의 미디어가 젊은 여성을 갈아치우는 동안, 지하의 작은 방으로 밀려났던 여성들이 ‘때마침 달려온 오빠’ 없이, 스스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 유종의 미를 거둔 예능 <소라와 진경>(MBC), 그리고 가수이자 작가인 오지은이 기획한 <영희 페스티벌>을 소개한다.

 

 

<소라와 진경>은 ‘1세대 모델인 이소라와 홍진경이 다시 한번 20대의 열정을 불태웠던 런웨이로 돌아가는 과정’을 표방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두 사람은 90년대를 장악한 모델이고, 여전한 스타성을 자랑한다. 홍진경은 예능과 사업으로 종횡무진하며, 유튜브 채널로도 흥했다. 그러니 이들에게 ‘나이가 들어서’ 지하의 작은 방에 유폐되었다는 비유를 쓰는 것은 비약이자 실례다. 하지만 ‘모델’이라는 직업과 연결하면 개연성이 생긴다. 모델은 신체 자본이 가장 큰 무기이자 정체성인 직업이다. 이미 체형이 남달라 모델이 된 이들이, 혹독한 관리(라는 이름의 혹사)까지 거쳐 만든 비현실적인 몸이 자산이자 명함이다. 그리고 체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나이다. 국내 슈퍼모델 대회는 2011년부터 만 25세 이하만 참가할 수 있는 제한을 없앴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모델이 10대 중후반에 데뷔하고 20대가 지나면 전성기가 꺾인다. 모델의 역량이 줄어든다기보다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이며, 모델이나 아이돌‧승무원처럼 여성의 섹슈얼리티나 어린 나이를 강조하는 직업이 아니라도 많은 여성에게 들이닥치는 현실이다.

 

남성의 나이 듦은 ‘와인’에 빗대며 성숙함이나 전문성으로 연결하면서, 여성의 나이 듦은 재앙 또는 존재하지 않는 일로 취급하는 세계의 비대칭성은 고스란히 미디어에 반영된다. 경력과 인지도를 업은 남성 MC 옆에는 당대의 가장 어리고 아름다운 여성 MC가 선다.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나이 차가 크게 나는 드라마는 차고 넘치고, 여성 배우에게는 다양한 배역이 드물고, <런닝맨>(SBS) 같은 장수 예능에서 새로 투입되는 여성 멤버는 기존의 멤버보다 어리며, 남자 가수들은 피처링 상대로 한참 어린 여성 후배 가수를 불러들인다. 

 

중략

 

가수 요조(왼쪽)과 오지은이 지난 13일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영희 페스티벌’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가수 요조(왼쪽)과 오지은이 지난 13일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영희 페스티벌’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영희 페스티벌>은 19년 차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이 기획,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렸다. 페스티벌의 이름인 ‘영희’는 옛 교과서 속에 나오는 대표 여성 이름, 그리고 ‘영광과 기쁨’이라는 한자어(榮喜)에서 따왔다. 오지은은 여성 뮤지션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느꼈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분야의 저평가된 여성 창작자가 모이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오지은의 지적처럼, 국내에는 숱한 음악 페스티벌이 있지만 여성 뮤지션의 비율은 절대적으로 낮고 섭외되는 이들의 나이 또한 20대에 치중되어 있다. 어린 여성 뮤지션은 기획자 오지은과, 영희 페스티벌에 참가한 또 다른 뮤지션 요조가 20년 전 ‘여신’과 ‘마녀’로 불렸듯이 대상화된다. 그리고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음악적 성장이나 도전의 의미는 고려되지 않은 채 지워진다. 나이 들거나, 살찌거나,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아도 문제다. 검정치마는 ‘음악하는 여자’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 시집이나 보면서 뒹굴어 아가씨.” 반복적으로 여성 뮤지션을 ‘아가씨’라고 호명하는 가사는 개인의 편협한 젠더 감수성을 넘어, 인디 음악계 그리고 넓게는 한국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한다. 15년 전 노래지만 여전히 여성 창작자는 어린 얼굴로만 인식되고, 그렇기에 그들이 하는 것은 ‘진짜’ 음악이 아니라는 훈수를 듣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성은 ‘아가씨’가 아니게 된다고 해서 죽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며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하고, 당연하게도, 더 잘하게 된다! 경험과 관록이 쌓아 올린 매력을 청중이 볼 기회가 없을 뿐, 그렇게 빛나는 여성 뮤지션을 담지 못하는 세상의 그릇이 작을 뿐.

 

3일간 열린 <영희 페스티벌>에는 이상은, 김사월, 김윤아, 이랑, 선우정아, 오지은처럼 오랜 기간 음악을 해온 뮤지션들과 정우, 정새벽, 박소은처럼 20대인 여성 뮤지션들이 어우러지며 관객과 호흡했다. 창작을 계속한다는 것이 고립과 단절이 아니라, 연결과 지속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여성 뮤지션의 공연 외에도 문화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작가, 스탠드업 코미디언, 만화가, 영화감독, 팟캐스터 등이 다양한 무대를 꾸리며 또 다른 영희인 관객을 만났다. 오지은은 “마음속에 영희가 있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 <영희 페스티벌>이라며, 페스티벌의 본질이 포용과 확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성 뮤지션을 옭아매는 여러 기준에 발목을 잡혔던 기획자가 MTF(지정성별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한 사람·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 코미디언, ‘철수’인 남성 관객을 배제하지 않으며 누구나 ‘우리’가 될 수 있음을 선언한 것은, 그가 궁극적으로는 <영희 페스티벌>이 사라지고 온 세상이 영희의 무대가 되기를 꿈꾸기 때문이다.

‘젊은’ 오지은이 절망과 우울에서 길어 올린 새카맣고 뾰족한 음악에 매혹되던 시절을 지나, 그가 가진 것을 모두 바쳐 새로운 세대를 위한 판을 벌이는 과정을 본다. 모든 영희, 페스티벌에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영희에게까지 “그래도 우리 또 겹치고 만나자”라고 말하는 지금의 오지은이 만들고 부르는 음악은 이전과는 또 다른 빛과 결이리라. 모두가 두려워하는 시간을 온몸으로 살아내야만 이르게 되는 영역에 있는. <소라와 진경>에서 아픔을 공유하지 못해 절연했던 소라와 진경이, ‘지금’의 성숙함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위로하게 되었듯이. 그 가치는 젊은 시절 가졌던 어떤 것보다 열등하지 않다. <소라와 진경>의 마지막, 마침내 오디션에 합격한 소라와 진경에게 파리의 패션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예전에는 어린 모델들만 원했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기회가 있어요. 이건 개인을 넘어 ‘중년 여성들의 복귀’고, 우린 그 점이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나이는 우리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예요.” 여성들이 지하의 작은 방으로 밀려나지 않고, 빛나는 재능과 함께 촘촘하게 땋은 시간의 결과물을 뽐낼 장이 필요하다. 바로 지금, 당장, 최대한 많이.

 

▼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https://www.khan.co.kr/article/20260622113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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