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전 오늘,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전면적으로 침공했다.

지옥불처럼 타오르는 증오의 화신 히틀러
시베리아처럼 냉혹한 숙청 기계 스탈린
인류 역사에서도 손에 꼽는 독재자들이 직접 맞붙은,
2차 세계대전에서도 손꼽히게 참혹했던 독소전쟁.
2차 대전 전체 인명 피해가 5000만인데, 그 중 4000만이 여기서 나왔다.
6월 22일의 총성은 나치 독일이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시작되었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기 1달 전
독일과 소련 사이에 불가침조약이 맺어졌다.
두 제국은 폴란드를 썰어먹으며 회식도 하고
앞으로 잘 지낼 것만 같았는데…

같았는데…

“???: 나인! 열등한 운터멘쉬!”

“???: 블럇! 반동 파쇼!”
두 제국은 도저히 서로에 대한 혐오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약대로만 하면 독일은 프랑스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고,
스탈린은 어수선한 내부 정치를 정리하며 그 좋아하는 숙청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참 좋은 조약이었는데, 왜 지켜지지 않았을까?

조약을 파기한 장본인인 히틀러는 애초부터 조약을 준수할 생각이 없었다.
히틀러는 공산주의를 인종 오염만큼이나 나쁘게 보았으며,
유대인이 독일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사상이라고 보았다.
(공교롭게도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가 모두 유대계라는 사실이 이런 생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치의 인종 투쟁과 공산주의의 계급 투쟁은 함께 갈 수 없는 사상인 만큼,
(아리아인 노동자와 비아리아인 노동자가 연대해야 한다는 관념을 나치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치는 초창기부터 독일 공산당과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또한 그는 1923년 감옥에서 <나의 투쟁>을 구술하던 때부터
‘레벤스라움’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생존 권역’이란 뜻의 레벤스라움은

우월한 게르만 민족이 번성하는 게 결국 인류에 이득이 되니,
동방의 열등한 슬라브인을 몰살시키고 그 땅에
독일인의 ‘생존 권역’을 확보해야 한다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사상이었다.
이렇듯 히틀러는 애초부터 공산주의를 몰아내고 러시아 땅을 빼앗아야겠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히틀러가 러시아인이 세운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랑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엥? 그런데 조약에 도장도 찍었는데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고?
약속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뤄지는 것.
히틀러에게 슬라브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렇게 히틀러가 뭐 숨길 생각도 없이 온몸으로 티를 내고 있는 동안,
모스크바의 서기장 동지는 뭘 하고 있었을까?
스탈린은 이미 국제 조약을 어겨본 경험이 있는 반공 파시스트의 약속을
어떻게든 믿어보려 애쓰고 있었다
일본의 고노에 정부에 깊이 침투해 있던 리하르트 조르게가
베를린이 주일 독일대사인 오이겐 오트에게 6월에 있을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하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알려왔지만, 스탈린은 믿지 않았다.
개전 5일 전 내무인민위원회에서 독일의 침략을 경고하자 스탈린은
“독일 공군 총사령부의 ‘정보 자료’를 어떻게 믿나? 당연히 기만작전이겠지.”
라고 말하며 오히려 국경 수비대에게 독일을 도발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독일이 쳐들어올 거라는 사실과 그 날짜까지 보고받은 스탈린은
왜 전쟁에 대비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개쫄렸기 때문이다.
실로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라는
스탈린 동지의 명언이 증명되는 순간!

권력을 잡기 위해 숙청을 하는 건지
숙청을 하고 싶어서 권력이 필요한 건지
하여튼 스탈린은 인류 역사에 보기 드문 숙청-머신이었고,
1937~38년 사이에 장교 34301명, 장성 91명을 숙청했다.
당연히 군대 꼬라지는 매우 볼만해졌고,
1940년에는 보병총감이
“225개 연대의 지휘관 중 육군대학교 졸업자는 0명, 군사 학교 졸업자가 25명,
나머지는 전부 속성 과정(개날림 과정)을 밟은 장교이다.”
라고 보고할 수준이었고,
사단장의 70%, 연대장의 70%, 정치부대장의 60%는 임관 1년차에 불과했다.
군대는 사실상 붕괴 상태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탈린은 믿고 싶은 대로 보았다.
제발 전쟁이 안 터졌으면 하는 마음에 전쟁이 임박했다는 보고를 모조리 무시했다.
사실 무시하지 않았어도 군대가 그 꼬라지인데 뭘 할 수 있었겠냐만,
뭐 민간인을 대피시킨다던가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인민 목숨을 신경이나 써줄 스탈린이 아니면서도.

이런 사정으로 1945년 아돌프 열사가 히틀러를 처단할 때까지 계속된
전쟁 중의 전쟁, 지옥 중의 지옥
독소전쟁이 시작되었다.
85년 전 오늘의 일이었다.
출처
독소전쟁(AK 커뮤니케이션즈)
미즈키 시게루의 히틀러 전기(AK 커뮤니케이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