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400년 전, 명나라 때의 사대부가 죽은 딸에게 보냈던게 아직 남아있는 편지
2,400 25
2026.06.19 14:18
2,400 25

전근대 사회의 부모들은 딸들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꺼리는 면이 있었습니다.

딸은 시댁 식구들과 살아야 했기에 결국엔 남이 될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까지 남은 몇몇 묘지명을 보면,

일부 아버지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딸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명나라 만력제 시절, 그러니까 400년 전. 
 

명나라의 한 아버지는 천연두로 두 명이나 되는 딸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동생이 죽고, 그 다음에는 언니까지 죽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죽은 큰 딸의 묘지명을 직접 쓰며, 딸의 어린 시절을 담담히 추억했습니다.

400년 전 명나라 시절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은, 현대의 눈으로 보기엔 어땠을까 보시면 되겠습니다.

 

 

 

cfhIwd

 

 

기미년(己未年) 겨울, 10월 23일

 

 

차마 붓을 들지 못하다가 3·7일이 되어

제물을 올리며 글을 지어 곡(哭)한다. 

생전에 아이가 뛰어놀던 곳에서 이 글을 태운다.

 

 

 

애통하구나. 너의 이름은 아진(阿震)이다.

네가 태어났을 때, 사실 나는 기쁘지 않았다.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기 때문이지.

 

 

허나 네가 돌이 되기도 전에

너는 참으로 가련(可憐, 사랑스럽다)하였다. 

턱짓으로 너를 부르면 너는 벙글벙글 웃곤 했지.

 

 

그때 유모가 너를 보살폈는데,

옷띠도 풀지 못한 채 하룻밤에 열 번도 더 일어나야 했다.

 

유모는 너 때문에 온갖 고생을 다 했다.

젖은 기저귀는 마른 것으로 갈아주고, 헌 살을 도려내고 새 살을 돋게 하듯 정성을 쏟았지. 

네가 보채면 어미는 화를 냈지만, 조금만 덜 보살펴도 너는 울어댔으니까.

 

 

작년 무오년(戊午年), 

내 운수가 사나워 과거 시험을 보러 자주 집을 비우며 너를 두고 떠나야 했다.

그 사이 유모 주씨는 죽었고, 나는 과거에 또 불합격하였지. 

집에 돌아오니 너는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물건을 달라고 조르더구나.

네가 곁에 있으니 근심이 있어도 마음이 즐거웠다

 

 

 

너는 날이 갈수록 자랐고, 지혜도 날마다 늘었다. 

아빠, 엄마를 부르는 소리도 조금도 틀리지 않았지. 

항상 손으로 문을 두드리고는

 

"거기 누구세요?"

 

라고 스스로 묻곤 했지.

 

 

내 큰형님이 오면 주인처럼 나서서 술잔을 올리며

 

"드세요(請)"

 

라고 하여 우레와 같은 웃음을 자아냈지.

 

 

네 조부가 시골에 가 계실 때

일년이 넘도록 뵙지 못했음에도

 

"할아버지를 아느냐?" 물으니

 

"흰 모자에 흰 수염 난 분(백모백수, 白帽白鬚)이요"

 

라고 말하였지

 

 

 

올해 유월(六月), 

 

네가 종기를 앓았을 때

아픈 곳을 문지르니 매우 애처로웠으나

감히 울지를 않더구나.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두려워했던 게지. 

 

 

과자나 먹을 것을 들고 있을 때도

반드시 부모의 뜻을 살피고

주지 않으면 입에 넣지 않았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실수로 손상을 입혀 

내가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면

손을 모으고 뒤로 물러나 숨곤 했지.

 

 

 

네 어미는 너무 엄격해서 수시로 빗을 빗기고 머리를 묶으며 단정히 하라 했지. 

네가 자라서 버릇이 굳어질까 걱정해서였지

 

내 뜻도 그러했지만, 몰래 어미에게 부탁하곤 했다.

 

'영해(嬰孩, 어린애)가 뭘 알겠소. 그저 하고 싶은대로 두구려."

 

 

 

얼마 전 네가 소주에 있다가 

우리 부부가 돌아올 때

너를 달래기도 하고 겁주기도 하고,

가면을 쓰고 바보 흉내도 내고, 

작은 바구니에 대추를 담아 밥상에 앉아 죽을 먹고,

입으로는 대학(大學)을 외우고

손으로는 부처님(阿彌)께 절을 했지. 

가지를 쥐고 내기를 하여 이기면 집을 돌며 달리기 시합을 하고

깔깔거리며 손뼉을 치고, 스스로 기이하다 여기며 좋아했지.

 

 

그런데 반달도 채 지나지 않아 네가 죽을 날이 닥칠 줄이야. 

하늘(天)인가 운명(命)인가,

신선도 알지 못할 일이로다.

 

 

 

네가 죽기 전...

말을 참 잘하던 네가, 

그 즈음엔 말을 못 하고 목소리는 쉬고 숨은 끊어질 듯한데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이었지. 

우리가 너를 둘러싸고 우니, 너도 눈물을 흘렸지. 

 

 

비통하구나. 이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느냐.

세상 풍습을 논하자면

딸이 죽었다고 어찌 울겠느냐마는 

귀신이 나를 학대함이 너무도 가혹하구나, 누가 알았겠느냐.

 

 

너보다 열흘 앞서, 두 살 어린 네 누이동생 아손(阿巽)도 

너와 같은 병을 앓다가 사흘 만에 죽었지

네가 평소에 친압(狎, 친하게 지냄)하던 동생이다.

 

 

 

이제 너는 짝이 없으니

마땅히 동생과 함께가거라. 

 

너는 조금 걸을줄 알지만 

동생은 아직 서는 것도 불안하니

오고 갈 때 손을 꼭 잡고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다투지 말거라.

 

 

만약 너를 키워준 유모를 만나면 다시 안부를 묻고,

저승에는 조부, 조모가 계시니

그분들께 의지하거라.

반드시 너희를 이끌어주실 게다.

 

그래서 조부모 묘소 곁에 너희를 권조(權厝, 임시 매장)하는 것이다. 

동생은 작으니 네가 이끌고, 

너도 작으니 할아버지가 보살펴 주시겠지.

 

 

 

나는 지금 네 생각에 

마음에서 너를 떨쳐낼 수가 없구나. 

네가 만약 안다면, 부디 꿈 속에 자주 나타나 다오. 

 

 

 

혹시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면, 

다시 내 자식으로 투태(投胎, 환생)하거라.

금강경과 여러 주문을 외우고

국을 끓이고 지전을 태워 너에게 보내니 명심하거라.

 

 

 

네가 저승의 염왕(冥王, 염라대왕)을 보거든,

 

"제 나이는 실로 어립니다.

귀신들이 업신여겨 괴롭히더라도 신(神)께서 도와주십시오."

 

단지 이와 같이 말하고, 울거나,시끄럽게 굴지 말거라.

저승은 집과 같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지금 글을 지어 너를 부르는데

글자는 따지지 말거라. 

 

다만 '아진(阿震)아'하고 부르니, 네 아비가 여기 있다. 

너를 위해 한 번 곡(哭)하고 너를 한 번 부르노라."

 

 

 

 

심승(沈承), 제진녀문(祭震女文)

 

명나라의 관리, 심승이 죽은 어린 딸에게 보내는 편지

댓글 25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바비 브라운X더쿠💗 비타민 베이스로 완성하는 피부 광채! ‘NEW 비타민 인리치드 페이스 베이스+’ 체험 이벤트 222 00:05 9,189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5,460,489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811,18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3,349,475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6,095,769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157,68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6 21.08.23 8,603,757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3 20.09.29 7,514,76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31 20.05.17 8,735,342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3 20.04.30 8,623,437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616,433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95362 이슈 사육사가 자기 그릇에 놓인 사과를 먹었을 때 판다 15:51 86
3095361 유머 조니 뎁, 주드로, 콜린 파렐 모두 출연료 반납한 영화 15:50 204
3095360 기사/뉴스 ‘LA 신인’ 박지현이 임팩트를 남긴 이유, 적극적인 공격과 악착같은 수비 15:50 56
3095359 이슈 누누이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줬다는 오마이걸 유아....jpg 15:48 489
3095358 기사/뉴스 [단독]보복대행 온라인에도 기승…텔레그램 ‘암행어사’ 구속기소 2 15:47 220
3095357 유머 한국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외국인들이 올리브영 터는 수준ㄷㄷ.reels 11 15:46 893
3095356 이슈 한국인 의사이지만 한국환자 말을 못알아들어서 한국어 통역사를 불렀는데 외국인이 옴ㅋㅋ 7 15:46 799
3095355 정치 [속보]李대통령 "제가 언제 주가 자화자찬 했나…없는 사실 만들면 되겠느냐" 15:45 358
3095354 이슈 한국에 20년 살아도 적응이 안됐다는 한국 문화... 5 15:45 990
3095353 이슈 일본) 자위관, "돈이 없어서" 빈집에 들어가 금 훔쳐 15:44 253
3095352 이슈 콘센트 뺄 수 없는 상황에서 잘못 연결되어있을 때 해결하는 방법 6 15:44 610
3095351 유머 당장꺼 시바 15:44 146
3095350 이슈 올해 코스피, 코스닥 ETF 수익률 차이 3 15:43 1,023
3095349 유머 SMTOWN RUN CLUB 26 Coming Soon 8 15:42 463
3095348 이슈 신곡 반응 좋아서 기분이 이상하다는 스테이씨 수민...jpg 1 15:41 419
3095347 이슈 [TXT의 육아일기] 삼촌이 뭐먹는지 보다가 갑자기 사르르.. 3 15:40 466
3095346 이슈 우크라이나가 미국 자금 지원에서 18개월째 차단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키이우 동물원의 스테판 스링크스는 여전히 살을 빼지 않았습니다. 8 15:40 1,205
3095345 이슈 독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먹는다는 국민 길거리음식.jpg 25 15:38 2,299
3095344 기사/뉴스 [KBO] 박세웅 작심발언 "좋을 땐 아무 말 없다가, 안 좋으면 그런 얘기를"…선수도 다 본다, 그리고 상처도 받는다 30 15:34 1,536
3095343 정치 이재명 대통령: 프랑스 여학생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있었는데 저와 아내를 보고 손가락하트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해줬어요💙 32 15:33 2,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