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은 AI 경기가 4월엔 이란전을, 5월엔 금리 상승의 압박을 이겨냈다. 이란전은 이벤트이고 금리는 펀더멘털이다. 그럼에도 시장이 견고하다는 건 AI를 일시적인 경기 사이클이 아닌 역사상 커다란 패러다임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조병문 메디치투자일임 대표는 코스피 1만 시대의 가능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지금의 장세가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 과거의 낡은 경제 공식을 밀어내고 있음을 강조했다.
조 대표는 “스페이스X 상장, 이란전, 고물가, 고금리, 미 Fed의 금리인상 공포는 이미 시장이 다 알고 있는 ‘예상된 악재’일 뿐”이라며 “장기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중국 등 메모리 공급에서 비롯될 수 있지만 주식시장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깨진 공식
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내린다
최근 ‘금리 쇼크’가 시장을 덮치며 잘나가던 증시가 변동성의 늪에 빠졌다.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6월 11일 장중 89.17까지 치솟았고 코스피와 뉴욕증시 3대 지수 모두 동반 하락하며 잔뜩 움츠러든 모습이다.
시장은 현재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금리인상=주가 하락’이라는 과거 공식을 따를 것이라는 비관론과 반도체 장세가 보여주는 체력을 신뢰하는 낙관론이다.
흥미로운 점은 시장의 중론이 낙관론에 기울어 있다는 것이다. 비관론을 주도하던 채권 전문가들조차 이번 변동성을 대세 상승장을 꺾는 조정이 아닌, 거쳐 가야 할 통과의례로 해석하는 시각이 짙다.

신영증권 김효진 애널리스트는 그의 보고서 ‘깨진 공식과 지켜질 공식’을 통해 이 현상을 분석했다.
김 애널리스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식시장에 깊이 뿌리내린 ‘금리를 내리면 호재, 금리를 올리면 악재’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과거 팬데믹 시절 유동성이 모든 것을 설명하던 시대에는 Fed가 금리를 올리면 주식을 파는 것이 정석이었다.
실제 2022년 Fed는 40년 만에 가장 공격적인 금리인상에 나섰고 나스닥은 30% 넘게 하락했다. 지금은 다르다. 전쟁으로 인한 원유 공급망 동맥경화와 생산 비용 급등, 5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졌음에도 한국 증시는 오히려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기현상을 보였다.
금리인상 가능성의 등장과 주가 최고치의 어색한 조합. 이에 대해 김 애널리스트는 Fed의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줄고 있다는 점을 짚는다. 과거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그린스펀, 버냉키 시절의 Fed와 달리 지금의 Fed는 정치권의 압박과 법적 분쟁에 휩싸이며 독립성 논란에 직면했다. 제롬 파월 전 의장에 대한 법무부 수사, 케빈 워시 신임 Fed 의장 인준 과정,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압력 등이 그 증거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AI란 거대한 불확실성’이다. 김효진 애널리스트는 AI의 경제적 효과를 두고 벌어지는 전문가들의 엇갈린 견해를 지적한다. 골드만삭스나 PwC는 AI가 생산성을 폭발시켜 물가를 잡을 것이라 낙관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아세모글루 같은 학자들은 AI의 GDP 기여도가 향후 10년간 연 0.1%p 수준의 미미한 성장에 그칠 것이라 경고한다.
Fed 역시 AI가 실물경제로 파급되는 ‘피지컬 AI’의 시대를 확신하지 못하기에 과거처럼 명확한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없다. 주인공이 확신을 갖지 못하니 시장은 그 신호를 더 이상 유일한 잣대로 쓰지 않게 된 것이란 주장이다.
그는 “워시 의장이 말하는 AI발 공급 확대가 물가를 잡는 시나리오가 맞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데이터로 잡히려면 몇 년은 더 걸린다”며 “그사이 Fed는 관세, 유가, 고용 데이터를 보며 땜질식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Fed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닌 이유는 트럼프 때문만이 아니라 AI 전환기라는 구조적 불확실성 앞에서 확신을 갖고 행동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이 빅테크(M7)의 현금, 독과점 구조, 그리고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다. 교과서적 공식에서 ‘금리인상 → 기업 비용 증가 → 투자 감소 → 주가 하락’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M7은 이 경로 밖에 존재한다.
이들은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있어 외부 차입 없이도 천문학적인 CAPEX(설비투자)를 감행한다. 완만한 금리인상은 오히려 자금조달 능력이 없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경쟁에서 도태시킨다. 결과적으로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해주는 ‘진입장벽’이 된다. 이들에게 고금리는 위기가 아니라 경쟁자를 지우는 도구인 셈이다.
경제학의 대가 A. 챈들러는 미국 경영사를 ‘10년의 경쟁, 90년의 과점’이라 요약했다. 현재 M7 기업들의 S&P500 내 시가총액 비중은 34%를 넘어섰다. 이는 현재 한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영업이익이 코스피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 후반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김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장세를 이렇게 진단한다. “증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를 선호하지만 호황과 낮은 물가가 동시에 공존할 수는 없다. 지금의 조정은 경제가 좋아서 청구된 ‘성장의 비용’에 가깝다.”
그는 “경제가 나빠서 무너지는 시장은 강세장의 끝을 알리는 신호지만 경기가 좋아서 흔들리는 시장은 투자 과열이 식고 나면 다시 상승세로 복귀한다”고 분석했다. 실적이 꺾이고 수요가 사라지는 하락은 ‘추세’이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좋아 발생하는 금리발 조정은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그가 제시하는 대응 원칙은 분명하다. 공포에 휩쓸려 투매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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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0/0000107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