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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오는 왜 서울시장 선거에서 졌나[안재광의 천만의 동네]

무명의 더쿠 | 08:42 | 조회 수 2663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4일 선거 승복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경DB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4일 선거 승복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경DB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일 당선 축하 꽃다발을 전달 받고 인사하고 있다.한경DB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4일 당선 축하 꽃다발을 전달 받고 인사하고 있다.한경DB


6월 3일 오후 6시 방송 3사 출구조사가 동시에 발표됐을 때 결과는 정해진 듯 보였습니다. 정원오의 우세였습니다. 오세훈을 5%포인트가량 앞섰습니다. 개표가 시작되자 출구조사는 현실이 됐습니다. 정원오는 초반부터 큰 격차로 앞서 나갔습니다. 자정을 넘기고 새벽이 깊도록 1위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흐름이 바뀐 건 4일 새벽 3~4시 무렵이었습니다. 개표가 더디던 송파와 강동 등에서 표가 쏟아지면서 숨어 있던 보수 표심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오세훈의 득표율이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그리고 오전 7시 17분 개표율이 94%를 넘어설 즈음 오세훈이 마침내 정원오를 넘어섰습니다. 개표 시작 13시간 만의 역전이었습니다. 투표지 부족 사태로 일부 개표가 멈추면서 최종 결과는 투표함 봉인 35시간 만에야 확정됐습니다. 오세훈 49.22%, 정원오 48.07%였습니다. 1.15%포인트, 6만259표 차이였습니다. 사상 최초의 5선 광역단체장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서프라이즈였습니다. 선거 전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원오가 앞섰습니다. 격차가 10~15%포인트까지 벌어진 조사도 있었습니다. 오차범위 안 접전이라는 조사는 더러 있었지만 오세훈이 앞선다는 조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정원오는 이길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70%에 육박했고 내란 청산 국면에서 처음 치러지는 선거라 국민의힘은 절대 열세였습니다. 선거 막판에는 서울 서소문 고가 철거 도중 붕괴 사고로 사상자가 났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삼성역 철근 누락 논란까지 터졌습니다. 하나같이 오세훈에게 불리한 악재였습니다. 그런데도 졌습니다. 전국 기초단체장 16곳 중 12곳을 차지한 민주당이지만 서울시장을 내준 순간 사실상 진 선거가 됐습니다. 무엇이 이 결과를 만들었을까요.

◆부동산에서부터 꼬였다

선거가 끝나자 분석이 쏟아졌습니다. 가장 많이 거론된 건 부동산입니다. 서울 시민에게 부동산만큼 예민한 문제는 없습니다. 대부분 아파트 얘기입니다. 이재명 정부가 보유세와 양도세를 올려 수요를 누르고, 다주택자 매물을 끌어내며, 대규모 공급으로 가격을 잡겠다는 신호를 거듭 보내자 집 가진 이들의 경계심이 커졌습니다. 실제로 강남 등 부동산에 민감한 지역의 투표율이 유난히 높았습니다. 이번 선거를 두고 “자산 투표”라는 말이 나온 이유입니다.

정원오의 딜레마가 여기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집값을 잡겠다는데 ‘명픽’으로 불린 그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를 순 없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시민의 상당수는 자기 집값이 오르길 바라거나 낡은 아파트가 빨리 재건축되길 기다립니다. 가격을 누르려는 대통령과 개발을 원하는 유권자 사이에서 정원오는 어느 쪽도 분명히 택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했습니다.

다급해진 선거 후반, 그는 오세훈식 공급론을 따라갔습니다. 재건축·재개발로 주택을 쏟아내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른바 ‘착착개발’입니다. 하지만 정비사업이라면 오세훈이 더 잘하리라는 게 시민들의 오랜 인식이었습니다. 신속통합기획으로 사업에 속도를 붙인 사람이 오세훈이었으니까요. 토론회에서 정원오가 “오세훈 임기에 공급이 막혔다”고 몰아붙이자 오세훈은 “박원순 전 시장 때 막힌 걸 내가 신속통합기획으로 풀었다”고 받아쳤습니다. 상대의 장기를 어설프게 따라 하다 자기 색마저 잃었다는 평가가 따라붙었습니다. 차라리 대통령과 한목소리로 ‘집값 안정’을 분명히 외치거나 아예 자기만의 부동산 철학을 들고 나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호감을 키우지 못한 후보

부동산만으로 이 패배를 다 설명하긴 어렵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오세훈이 싫다는 ‘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정원오가 ‘호감’을 만들어내지 못한 선거였다는 점입니다.

선거 내내 따라다닌 말이 ‘부자 몸조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원오가 언제부터 부자였습니까. 기득권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도전자가, 가장 절박해야 할 사람이 몸을 사렸습니다.

토론 회피가 단적인 예입니다. 오세훈은 여러 차례 맞대결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정원오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안전을 정쟁 소재로 삼지 말라”는 이유를 댔지만 과거 민감한 사안을 정면으로 해명하지 않으려는 회피라는 해석이 우세했습니다. 오세훈이 철근 누락의 현장인 삼성역에 함께 가 토론하자고 압박해도 정원오는 자리를 피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이 마주 앉은 건 선거를 코앞에 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최 법정 토론회 한 차례뿐이었습니다.

말을 아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동산이나 대통령과 관련된 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정원오는 입을 닫거나 원론을 되풀이했습니다. 자기 정견과 시정 구상을 펼쳐 보일 기회를 스스로 닫아버린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원오 하면 떠오르는 한마디가 없었습니다. 성동구청장 시절 일을 잘했다는 평가, 그뿐이었습니다. 성동구 바깥의 시민에게는 그조차 와닿지 않았습니다.

오세훈은 온 국민이 압니다. 정원오는 이번 선거에서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서울시의원도 아니고 ‘천만 도시’를 책임질 서울시장을 뽑는 선거입니다. 대통령이 점찍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를 맡길 수는 없다고 유권자들은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본인은 분명 열심히 뛰었을 겁니다. 하지만 유권자의 눈에 그렇게 비쳤느냐가 중요합니다. 얼굴은 기억나는데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 후보, 그것이 막판까지 정원오를 따라다닌 그림자였습니다.

◆네거티브 대신 필요했던 ‘울림’

네거티브도 큰 도움이 안 됐습니다. 정원오 캠프는 오세훈의 약점 공략에 화력을 집중했습니다. GTX-A 삼성역 철근 누락을 두고 “오세훈의 안전 불감증이 드러났다”며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까지 소환했습니다. “큰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강버스는 안전을 이유로 운항을 멈추겠다고 했고 광화문광장의 ‘감사의 정원’은 모조리 뜯어내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공세는 오세훈을 향한 거부감은 키웠을지언정 정원오에 대한 호감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세훈 캠프의 네거티브에 대한 맞대응 성격도 있었습니다. 오세훈 측은 박원순 전 시장이 중단시켰던 월드컵대교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세빛섬을 일일이 거론하며 “정원오가 똑같이 답습하려 한다”고 몰아세웠습니다. 외유성 캉쿤 출장 의혹과 30여 년 전의 폭행 사건까지 들춰냈습니다. 공방이 오가는 사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정원오는 각인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오세훈에게는 분명한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서울을 하나의 상품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브랜드 도시로 키우겠다는 비전입니다. 그 그림은 구체적이고 일관됐습니다. 2007년 한강 르네상스로 시작해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로 이어진 한강 개발, 그 물길 위에 띄운 한강버스, DDP와 세빛섬 같은 랜드마크가 대표적입니다. 도시 미관을 다듬는 ‘디자인 서울’에서 ‘디자인 서울 2.0’으로의 진화도 보여줬습니다. 외국인을 한강 야경으로, 불꽃축제로, 봄가을 축제로 끌어들이는 마케팅이었습니다. 전시 행정이라고, 치적 사업이라고 숱하게 욕먹었지만 서울을 세계에 잘 팔리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방향만큼은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0/0000107285?s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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