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영은 당시 전유성의 딸로부터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곧바로 전주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고 밝혔다. 그는 "병실에 갔는데 제가 알던 교수님이 아니셨다"며 "산소호흡기를 끼고 두꺼운 담요를 덮고 계셨다. 그 모습이 아직도 사진처럼 눈앞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이어 "교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4일 동안 거의 2시간 정도밖에 못 잤던 것 같다"며 "저와 양배차, 이병호, 대학 동기 승희까지 제자 네 명이 교수님 곁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4일이 제 인생에서 가장 진실된 시간이었다. 20년 동안 못했던 표현을 그때 다 한 것 같다"고 말해 먹먹함을 자아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전유성 특유의 유쾌함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김신영은 "'교수님 너무 사랑해요'라는 말을 매일 했는데, 교수님이 누워서 듣다가 '새로운 거 없냐'고 하셨다"며 "그래서 영어를 비롯해 외국어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계속 했다"고 전해 웃음을 안겼다.
병실에서 벌어진 또 다른 일화도 공개했다. 그는 "선배님들이 교수님을 찾아오셨는데, 제가 누가 오셨는지 설명을 해드려야 했다"며 "막상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선배님이랑 선배님 오셨어요',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라고만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에 전유성은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김신영에게 "야, 이름 좀 외워라. 모르면 검색해"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줬다고. 엄숙한 상황 속에서도 특유의 재치로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든 전유성의 모습은 그리움을 더했다.
김신영에게 전유성은 누구보다 특별한 스승이었다. 그는 "교수님은 저를 처음으로 '잘한다'고 칭찬해 준 어른이었다"며 "개그맨 시험을 볼 때도 직접 따라와 주셨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서른 살 무렵 공황장애로 활동을 중단했을 당시에도 전유성은 큰 버팀목이 됐다. 김신영은 "'사람들이 저보고 한물 갔다고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서 '잘됐다. 한물 가고 두물 가면 보물 된다'고 하셨다"며 평생 잊지 못할 위로를 떠올렸다.
또 그는 "교수님은 터널을 지나갈 때마다 전화를 걸어 끊임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며 "돌아가신 뒤에야 저 때문에 공황장애 관련 책까지 사서 공부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 티를 한 번도 내지 않으셨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신영은 스승이 남긴 마지막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도 애도 중인 것 같다"며 "우리 집에는 교수님이 돌아가시는 날 서울에 가라고 주셨던 마지막 주유비 10만원이 아직도 액자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김신영은 전유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짬뽕 먹방'을 꼽았다. 그는 "교수님이 먹고 싶어했던 짬뽕을 곱빼기로 시원하게 먹어보고 싶다"며 "교수님만을 위한 먹방을 보여드리고, 손을 잡고 '고마웠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꿈에서라도 꼭 그러고 싶다"고 전해 먹먹한 여운을 남겼다.
박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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