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z2PFdFb32t8
이 곡은 1986년에 작곡이 완료되어 발표를 기다리는 곡이었으나, 작사를 완성하지 못해서 1989년까지 발매가 미루어진 곡이다.
당시 이 곡을 작곡했던 해바라기의 이주호씨는 작사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에 1989년 2월 28일, 한 기사를 보고 이 곡의 가사를 5분만에 써냈다고 한다.
기사의 내용은...
"연쇄진학 부모님부담" 어린 4자매 자살 기도
27일 오후 2시 30분쯤 서울 강서구 공항동4의43, 김원묵 씨(52) 집 지하셋 방에서 양태범 씨(44)의 큰딸 순미 양(14) 둘째딸 정미 양(10) 셋째딸 은미 양(8) 막내딸 세원 양(6) 등 4자매가 생활고를 비관한 끝에 극약을 마시고 신음중인것을 어머니 김옥순 씨(36)가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막내딸은 숨지고 나머지 3명은 중태다.
어머니 김 씨에 따르면 하오 2시쯤 집근처 가게에서 쌀을 사갖고 돌아와보니 네 딸이 방안과 지하실입구 등에 쓰러져 신음중이고 막내아들(2)은 방안에서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큰딸은 안방책상위에 묵은달력을 뜯어 「엄마, 아빠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걱정마세요. 나쁜딸 올림. 부모님께」라는 내용의 유서를 검은색 사인펜으로 써놓았다.
큰딸 순미 양은 병원에서 "집안 살림이 어려운데다 나는 중학교에 새로 입학하게 되고 넷째도 올해 국민학교에 진학하게 돼 집안부담이 너무 커질 것 같아 동생들과 함께 극약을 마셨다"고 말했다.
아버지 양 씨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한비산업주식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면서 월25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6명의 식구를 부양해 왔으며, 지난 87년 4월부터 이집 지하실방 2칸을 8백만원에 전세내 살아왔다.
부모들은 경찰에서 "큰딸과 둘째딸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해 우등상을 탈 정도로 학교 성적이 우수했으며 평소 명량한 성격으로 이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이제 겨우 14살인 큰 딸이 집안의 가난을 걱정하고 자신과 동생들과 함께 음독자살을 시도한 사건이었다.
막내인 남동생만 남겨둔 채 자신들이 없어지면 집안 사정이 나아질거라는 생각을 14살에 했다는 이 기사를 본 이주호씨는 그 안타까움을 가사로 남겼다.
사랑으로 - 해바라기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