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미쳤지…. "
2008년, 당시 30대 후반에 직장 경력 10년 차였던 나는 당당하게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라는 울타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로부터 무려 15년, 난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아, 내가 왜 그랬을까…”라며 피눈물을 쏟았다.회사에서 뛰쳐나올 때, 나는 자신감에 넘쳤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 정도는 어디 가서든 벌 수 있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대기업인 삼성생명에 다니며 금융사 밥을 먹었으니, 회사 밖에선 ‘프리랜서 금융 컨설턴트’로 멋지게 날아오를 거라 자신했다.
이런 확신이 엄청난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퇴직 후 곧바로 깨달았다. 하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보험 팔고 펀드 판매하고 은행 대출 업무를 대행해주는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타고난 짠돌이에다 완벽주의 성격이니 프리랜서로도 야무지게 일했지만 돈은 회사 다닐 때처럼 모이지 않았다.
" 회사 월급의 가치는 그 액수가 아니라 지속성에 있습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매달 같은 날에 정해진 액수가 또박또박 나오잖아요. 그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 덕분에 삶이 풍요로운 겁니다. 그런데 프리랜서는 어느 달에 1000만원을 벌었어도, 당장 그다음 달엔 소득 0원이 될 수 있어요. 그러니 항상 불안하고 쪼들립니다. "
나는 월급의 소중함을 몰랐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늘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손에 쥐는 돈은 월 200만원 남짓이었고, 아내에겐 그간 모아둔 돈을 헐어다 생활비로 가져다주는 ‘마이너스’ 생활을 하며 아슬아슬하게 버텼다.
재취업에 나서지도 못했다. “이제부터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을 해보겠다”는 날 믿고 퇴사를 허락해준 아내,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들 앞에서 차마 “너무 힘들어. 다시 취업할까?”라는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이제 퇴직 18년 차다. ‘딱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소득을 근근이 이어오던 나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나는 천만다행으로 ‘돈으로 혼쭐내는 남자’라는 의미의 ‘돈쭐남’ 김경필(56)로 나름 유명세를 얻었다. 경제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자로 자리 잡았고, 100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 TV 예능 프로그램 단골 패널로 활약하며 남부럽지 않은 소득도 올리고 있다.
이 정도 입지를 다진 건 딱 3년 전부터다. 어떻게 이런 반전이 가능했을까. 피눈물 나는 후회의 세월 15년을 거쳐 프리랜서로 자리 잡은 비결, 대기업에서 뛰쳐나와 직접 경험한 세상의 실체, 1970년생 동갑 친구들에게 “무조건 정년까지 버티라”고 말하는 나의 속내, 퇴직을 꿈꾸는 이들에게 “최소한 이것만은 준비하고 나오라”는 ‘찐조언’까지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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