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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맨헤라'와 '정병', 청년들이 무너짐을 자처하는 이유 [송그루의 Be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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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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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사이에서 ‘멘헤라 공원’으로 불리는 경의선 책공원. 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청소년 사이에서 ‘멘헤라 공원’으로 불리는 경의선 책공원. photo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멘헤라'라는 단어가 있다. 일본어 'メンヘラ(mental health)'에서 파생된 이 인터넷 용어는 원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국에서는 여기에 '정병'(정신병의 줄임말)이라는 더 직접적인 표현까지 더해져, 이제 이 단어들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들이 비하나 조롱의 맥락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자발적으로 채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셜미디어(SNS) 프로필에 '정병'을 자처하고, '나 멘헤라야'라는 자기표현이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멘헤라 패션이라는 장르가 생겨났고, 멘헤라 음악이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고 있으며, 멘헤라적 감수성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들이 하나의 미학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쯤 되면 이것은 더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유행어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한국 사회의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표면 위로 올라온 징후로도 볼 수 있다.

 

미래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것

 

이 현상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한국 청년 세대가 갖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알아야 한다. 부동산 가격은 평생의 소득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고, 안정적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열심히 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성장 서사는 설득력을 잃는다. 그리고 성장 서사가 무너지면 사람들이 관계에서 추구하는 것도 달라진다.

 

과거에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을 이상적 파트너로 여겼다. 서로를 밀어올리고, 더 나은 내일을 함께 만들어갈 동반자를 찾았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목적지의 존재 자체가 의심받는 시대에 이 기준은 비현실적인 판타지가 된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은 함께 '무너져도 괜찮은' 사람이다. 성장의 연대가 아닌 침잠의 연대를 찾는 것이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증명하거나 고치려 하지 않고, 그저 함께 가라앉는 것을 허용하는 관계이다. 멘헤라와 정병의 자발적 수용은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나는 불안정하다"는 말은 곧 "나는 당신에게 성장을 요구하지 않겠다, 그러니 당신도 나에게 성장을 요구하지 말라"는 암묵적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이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이유는, 불과 얼마 전까지 지배적이었던 또 다른 트렌드와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무해함' 선호 현상이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는 공격성을 철저히 배제한 캐릭터, 콘텐츠, 인물이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날카로운 의견보다 둥근 말투가, 강한 주장보다 조용한 동의가, 개성 있는 존재보다 해롭지 않은 존재가 환영받았다. 이런 무해한 캐릭터가 선호받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공격성'과 '도전'이라는 위험을 질 정도로,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사회 전반적으로 더 이상 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해함'의 정의를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유해하다는 것은, 뒤집어 보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편이 되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날 선 의견은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같은 입장에 선 사람에게는 든든한 무기가 된다. 강한 주장은 누군가를 밀어내는 동시에 누군가를 대변한다. 즉 유해함이란 본질적으로 '편을 드는 일'이며, 한쪽의 손해를 무릅쓰고 다른 한쪽의 이익을 택하는 행위다. 그런데 이 거래가 성립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편이 되어준 쪽이 그 대가로 나에게 돌려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과 보상의 사다리가 작동하던 시절에는 이 거래가 남는 장사였다. 누군가의 편에 서서 적을 만들더라도 그 편으로부터 돌아오는 이익이 충분히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법칙이 멈춰 선 지금 편을 들어 얻는 이익은 초라해지고 적을 만들어 치르는 비용만 또렷하게 남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차라리 아무 편도 들지 않는 쪽을, 누구에게도 유해하지 않은 쪽을 택한다. 무해함의 선호는 선한 본성의 발현이라기보다, 유해함의 수지가 맞지 않게 된 시대가 내린 합리적 계산에 가깝다.

 

멘헤라·정병 현상은 이 무해함의 연장선이자 동시에 진화한 형태다. 무해함이 '나는 해롭지 않다'는 수동적 방어였다면, 멘헤라는 '나는 이미 충분히 약하다'는 적극적인 내려놓음이다. 방향은 같다. 타인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이 '위험하지 않은 척하기'에서 '이미 무너져 있음을 보여주기'로 전환된 것이다. 이 전환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다. 무해함은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든다. 항상 조심하고, 배려하고, 모난 부분을 숨겨야 한다. 반면 멘헤라는 그 에너지마저 포기한 상태다. 무해함의 피로가 누적된 끝에 도달한, 더 솔직한 형태의 자기 보호인 셈이다.
 

약함이 작동하는 방식

 

그러나 이 현상을 순수한 절망의 표현으로만 읽는 것은 분석적으로 불완전하다. 여기서 오해를 경계해야 하는데, 멘헤라·정병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이 현상이 사회적으로 지속되고 확산되는 데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조건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약함의 언어가 이토록 빠르게 퍼진 이유는 그 언어가 이 시대의 사회적 환경 안에서 일종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약함의 자기 선언은 기대의 체계로부터 이탈을 허용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개인에게 끊임없는 성장을 요구해왔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높은 연봉, 더 안정적인 가정 등이 그 예시다. 이 사다리 위에서 한 칸이라도 미끄러지면, 그것은 곧 개인의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나는 정병이다"라는 말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조용한 거부에 가깝다. 그리고 그 거부가 가능해진 것은 개인이 나약해져서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약함의 언어는 관계의 문법을 바꾼다. 전통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서로의 강점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멘헤라의 세계에서는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관계를 여는 열쇠가 된다. 이것은 완벽함을 전제로 한 관계가 얼마나 피로한 것이었는지를 역으로 증명한다. 강한 모습만 보여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오래된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도 있다. 취약함이 관계의 유일한 접착제가 될 때, 그 관계는 서로를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변화가 말해주는 것은 기존의 관계 방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변화의 밑바닥에는 더 원초적인 욕구가 깔려 있다. 내 불행과 고통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다. 멘헤라의 언어는 약함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겪는 고통은 엄살이 아니라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받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고통은 각자 알아서 삼켜야 하는 것, 입 밖에 내는 순간 나약함의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불행을 '정병'이라는 이름으로라도 표현하는 행위에는, 적어도 이 아픔만큼은 진짜로 봐 달라는 절박한 인정의 요구가 숨어 있다. 어쩌면 무너짐을 자처하는 시대의 본질에는 바로 이 '인정받고 싶음'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최근 '쉬었음 청년'이라는 통계적 분류가 기성세대의 입을 통해 마치 청년들의 자발적 선택인 양 프레이밍되었을 때, 청년들이 공동적으로 반발심을 가진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위험도 있다. 취약함이 관계의 유일한 접착제가 될 때, 그 관계는 서로를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변화가 기존의 관계 방식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를 겹쳐 보면 멘헤라·정병의 유행이 자학이나 관심 끌기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것은 숨 쉴 여지가 극도로 줄어든 환경에서,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발달시킨 일종의 언어적 분출 형태로도 볼 수 있다. 정상성을 좇고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더 적은 보상을 돌려주는 역전된 시대가 만들어낸 풍경이 바로 지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후략

 

전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3/0000058933?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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