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성과급 잔치'에 수도권 주택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이 풀리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경험했듯, 집값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의 하나가 유동성, 즉 돈이다. 유동성이 늘면 수위가 올라가 배가 자연히 떠오른다. 세계적인 반도체 특수를 누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성과급 얘기다. 두 회사의 주가가 주식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듯, 성과급이 주택시장을 뒤흔들지 주목된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반도체(DS) 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 제도를 신설하며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책정했다. 상한선이 없는 구조다.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300조원)를 대입하면 재원만 31조5000억원에 달한다.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1인당 최대 6억원,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거액을 손에 쥔다. SK하이닉스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환원하기로 했다. 올해 예상 실적(200조원대) 기준 1인당 6억~7억원이 거론된다.
두 회사가 올해와 내년 2년간 지급할 성과급 총액은 보수적으로 잡아도 130조원, 낙관적으로는 180조원을 웃돈다. 업계는 반도체 특수가 적어도 내년까지는 안정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본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5억원까지 사내 주택대출을 해주기로 했다. SK하이닉스도 비슷한 대출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회사의 주택대출 규모는 3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성과급과 주택대출을 합치면 150조~200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수도권 총거래액과 비슷
이 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일까. 하남 교산, 고양 창릉 등 수도권 3기 신도시 6곳의 보상금 추정액이 20조원 정도다. 과거 주택시장은 몇조원의 보상금으로도 출렁거렸다. 2000년대 중반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개발 당시 풀린 보상금이 2조5000억원가량이었다. 이 자금이 인근 강남과 분당, 용인 등으로 유입되면서 집값을 급등시키는 도화선이 됐다. 정부는 이때부터 보상금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둑'을 쌓으며 씨름했다.
신도시 보상금은 두 회사의 성과급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셈이다. 성과급은 지난해 1년간 수도권 아파트 시장의 거래금액과 맞먹는다. 지난해 아파트 거래액이 서울 98조1900억원, 경기 82조2200억원, 인천 11조2000억원 등 총 191조6100억원이었다.
규모만 큰 게 아니다. 성격도 다르다. 신도시 보상금은 인근 토지주 일부에게 몰린다. 반면 성과급은 11만 명 안팎의 두 회사 임직원에게 흩어진다. 받는 사람이 많고, 그 대부분이 30·40대 실수요층이라는 점이 보상금과 갈리는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가 막지 않을까. 거대한 반도체 성과급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 정부의 유동성 억제는 금융기관을 통한 대출 억제인데, 성과급은 대출과 상관없는 사실상의 현금이다.
사내대출도 금융기관 대출이 아니어서 규제를 받지 않는다. 주택담보대출의 LTV(담보인정비율)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계산에서 빠진다. 현재 LTV는 서울 등 규제지역에서 15억원 이하 주택은 6억원, 15억~25억원 4억원, 25억원 초과 2억원이다. DSR의 총부채는 금융기관 대출만 따진다.
성과급과 사내 주택대출은 주택 구매력을 증폭시킨다. 성과급으로 현금 동원력이 늘 뿐 아니라, 성과급이 연소득에 포함돼 금융권 대출 한도까지 올라간다. 여기에 규제 밖 사내대출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금리도 연 1.5%로 아주 저렴하다. 4월 기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평균 4.5% 정도다. 앞으로 금리가 오르면 5%를 넘을 것이다. 현금이 늘고, 대출 한도가 늘고, 싼 사내대출까지 보태지는 삼중 효과다.
동탄은 이미 '태풍의 눈'
성과급은 올해 실적을 바탕으로 내년 초, 내년 실적은 2028년 초 지급될 예정이다. 그런데 시장은 벌써 신호를 보내고 있다. 두 회사 직원의 생활권인 수도권 남부가 들썩인다. 화성시 동탄신도시가 '태풍의 눈'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동탄 주간 상승률은 4월 말 0.2%에서 상승 폭을 키우더니 이번 주 0.6%까지 뛰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보면 동탄은 신고가 행진이다. 동탄역 시범리슈빌 전용 102㎡는 삼성전자 노사 합의 전 최고가 13억원에서 합의 후 14억3000만원으로 1억3000만원 뛰었다. 동탄역 시범우남퍼스트빌 70㎡도 12억5300만원에서 13억8000만원으로 1억2700만원 올랐다. 기대감으로 합의 전부터 거래가 급증했다. 올해 1분기 동탄 거래량은 2805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128.9% 늘었다. 성과급을 태풍에 비유한다면, 지금은 예보 단계일 뿐이다.
성과급의 영향은 직급에 따라 지역적으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수억원을 쥔 30·40대 실무 엔지니어는 직주근접 신축을 노린다. 동탄·평택 고덕·용인 기흥이 대표적이다. 부장·고참급은 학군과 정주 여건을 갖춘 광교·분당으로 눈을 돌린다. 분당은 재건축 기대감도 높다. 평균 보수가 7억원을 웃도는 임원층은 강남과 목동·마용성을 노릴 수 있다. 같은 회사의 성과급이 동탄에서 광교를 거쳐 강남까지 수요를 층층이 쌓는 셈이다. 두 회사의 성과급 태풍이 수도권 전역을 강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과급 태풍의 위력을 약화할 한계도 많다. 우선 돈이 한꺼번에 쏟아지지 못한다. 삼성전자 특별성과급은 전액 자사주로 지급되고, 즉시 팔 수 있는 건 3분의 1뿐이다. 나머지는 1년, 2년 뒤 풀린다. 임원은 매각 제한이 더 길어 사장급은 3년이다. 돈이 부동산으로만 가지도 않는다. 고소득 엔지니어는 주식·ETF·해외 자산에도 돈을 나눈다.
규제가 발목 잡을까
규제라는 걸림돌도 있다. 지난해 10·15 대책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묶인 서울 전역과 분당 등 경기도 12곳에선 실거주 조건으로만 집을 살 수 있다. 대출이 아니라 현금으로 사더라도 직접 들어가 살아야 한다. 생활권이 아닌 서울 먼 곳의 집은 사기 어렵다. 성과급으로 자금을 마련해도 토지거래허가의 '실거주' 문턱을 비껴가기 어렵다. 성과급 파급 효과가 서울 인기 지역으로 번지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규제지역 확대 가능성도 변수다. 현재 화성 동탄과 용인 기흥, 평택 등은 규제지역에서 빠져 있다. 정작 매수세가 몰리는 곳이 규제 무풍지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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