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qoo

조선 도자기 모양 하나로 K-푸드 글로벌 팬덤을 만든 52년의 고집

무명의 더쿠 | 06-05 | 조회 수 5441

1973년 어느 날, 빙그레 연구원들이 도자기 박람회에 갔다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저 달항아리를 우유 용기로 쓰면 어떨까?"


사내 반응은 차가웠다. "보관이 안 된다. 진열대에 올려놓기도 불편하다. 원가도 올라간다." 반대가 쏟아졌다. 그 반대를 뚫고 1974년에 나온 게 뚱뚱한 노란 단지, 지금의 바나나맛우유.


52년이 지났다. 그 항아리는 아직도 그대로다. 누적 판매 95억 개. 30개국 수출. 연 매출 2,000억 원.


불편한 용기를 고집한 결과.


1. 달항아리가 우유 단지가 된 날 — 1973년, 박람회 한 장면


• 1973년 빙그레 개발팀이 도자기 박람회에서 조선 백자 달항아리와 마주쳤다. 그 둥글넓적한 곡선이 그대로 용기 디자인으로 옮겨졌다.

• 문제는 내부 반대였다. 보관 불편, 진열 어려움, 원가 상승. 당시 업계 표준은 180~200mL 직사각 용기였는데 빙그레는 240mL 불뚝배기 항아리를 밀어붙였다.

• 두 개의 플라스틱 부품을 맞대어 회전시켜 붙이는 제조 방식은 지금도 빙그레만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특허가 아니라 50년 쌓인 제조 노하우 자체가 진입 장벽이 됐다.

• 원유 함량도 85%로 당시 경쟁 제품 대비 압도적으로 높게 잡았다. 관행을 따른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게 다 지금의 자산이 됐다.


2. 안 바꾼 것이 자산이 됐다 — 52년 동안 두 번만 손댄 디자인


• 일반 소비재 브랜드는 5~10년마다 패키지를 갈아엎는다. 빙그레는 52년 동안 딱 두 번, 소폭 수정만 했다. 업계 상식으론 설명이 안 되는 선택이다.

• 숫자가 그 선택을 대변한다. 하루 평균 100만 개 판매, 누적 95억 개, 시장 점유율 80%를 51년 연속 유지. 가공유 시장 1위를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

• 그 항아리 모양이 세대를 넘는 기억이 됐다. 목욕탕 탈의실 냉장고, 초등학교 소풍 가방 속 그 노란 단지. 아무도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안다. 광고비 0원으로 작동하는 감정 자산이다.

• 2009년 법규 개정으로 실제 바나나즙 없이는 '맛'이란 표현을 못 쓰게 됐을 때도 빙그레는 공정을 바꿔서 이름을 지켰다. 타협 대신 원가 상승을 택한 것이다. 그게 브랜드에 대한 태도다.


3. 드라마 한 장면이 수출 지형을 바꿨다 — 그리고 짝퉁 100종과의 전쟁


• 2012년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에서 배우가 바나나맛우유를 마시는 장면이 중국에 방영됐다. 그게 불씨가 됐다. 이후 수출 국가가 30여 개로 불어났다.

• 중국 진출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2008년 첫 진출 이후 2010년 구제역 사태로 수출이 전면 중단됐고, 재진입 후엔 중국 현지 모조품이 100종 이상 난립하며 매출이 꺾였다.

• 빙그레의 반격 카드는 뜻밖에도 단지형 수출 재개였다. 짝퉁은 맛을 흉내 낼 수 있어도, 50년 된 항아리 모양의 무게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오리지널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역설이다.

• 현재 30여 개국 수출, 누적 95억 개. K-드라마가 불을 붙이고, 바꾸지 않은 디자인이 그 불을 키웠다. 바꾸지 않아서 글로벌이 된 역설이다.


4. 뚱바에서 건지는 한 가지 — 당신의 '달항아리'는 무엇인가


• 브랜드의 핵심 자산은 기술 스펙이 아니라 감정이다. 바나나맛우유는 "어린 시절의 맛"이라는 감정을 52년째 보존하고 있다. 그 감정이 국경을 넘어서도 작동했다.

• 위기가 왔을 때 빙그레가 꺼낸 카드는 신제품이나 리뉴얼이 아니었다. 오리지널 단지였다. 차별화는 새로운 것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오리지널리티, 그 자체가 무기가 된다.

• 스타트업이든 중견 기업이든 "바꿔야 산다"는 압박은 항상 존재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바꾸려는 게, 혹시 가장 지켜야 할 것 아닌가?

• 빠르게 바꾸는 것만이 전략이 아니다. 지키는 것도 전략이다. 단, 무엇을 지킬지 먼저 알아야 한다.


bKeoJE

[주의] 이 글을 신고합니다.

  • 댓글 30
목록
0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 필사하기 좋은 문장과 사랑스러운 스누피를 한 권에 《하루 한 장 필사 노트》 피너츠 에디션! 830
  • [🚨필독🚨] 로그인 보안 강화📢시크릿모드 사용자들 필독 (사용안함 옵션 추가)📢
  •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 ◤더쿠 이용 규칙◢ [260812 기사뉴스 저작권법 침해 강력 제재]
  •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92
  •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76
  •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54
  •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24
  • ◤스퀘어 공지◢ [9. 타회원 글/댓글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 모든 공지 확인하기()
    • 클럽 물관리 중
    • 11:36
    • 조회 88
    • 유머
    • [속보] 李대통령 6개부처 개각 단행…경제부총리·법무·국방·성평등·국토·중기
    • 11:36
    • 조회 48
    • 정치
    • 8번출구 영화 아저씨 등장하는 씬들 다 아저씨 혼자 좃뺑이쳐서 순수체급으로 무한루프 하고 계셨다는 비하인드 영상보고 개웃겨서ㅜ
    • 11:35
    • 조회 190
    • 유머
    • “대만에서 들고다니면 다 알아봐” 한국 3000원 쇼핑백이 여행 필수품 된 이유
    • 11:32
    • 조회 1225
    • 기사/뉴스
    5
    • "안 읽는다면서 3시간 줄 섰다"…요즘 MZ들의 책 소비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 11:32
    • 조회 529
    • 기사/뉴스
    4
    • 스키즈 리노, 네팔 대홍수 이재민 긴급구호 위해 1억 원 기부
    • 11:29
    • 조회 159
    • 기사/뉴스
    1
    • [속보] 구윤철 부총리, 미국행 돌연 취소… 공항까지 갔다가 발길 돌려
    • 11:29
    • 조회 599
    • 정치
    6
    • 친형이 사라져서 찾으러 다닌 육식공룡
    • 11:25
    • 조회 577
    • 유머
    • [속보]“20년 장기전세 방 빼세요” 칼 빼든 서울시
    • 11:25
    • 조회 1652
    • 기사/뉴스
    24
    • 여성들에게 탈모체험 시켜주고싶다는 일본남성...
    • 11:22
    • 조회 1951
    • 이슈
    32
    • [ⓓ콘서트] "눈치 보지 말고, 즐겨!"…박재범, 올라운더의 축제
    • 11:17
    • 조회 228
    • 기사/뉴스
    4
    • [선공개] 숟가락 방금 들었다고요 | 1박 2일 시즌4 |
    • 11:16
    • 조회 196
    • 유머
    • 극장판 『치이카와』일본 흥행 근황
    • 11:15
    • 조회 933
    • 이슈
    17
    • 전철안에서 분실물 주워서 역무원에게 전해주고 참잘했어요 명함받았엉(일본)
    • 11:15
    • 조회 1483
    • 이슈
    5
    • 5km가 건강달리기인 이유
    • 11:14
    • 조회 3107
    • 정보
    20
    • ‘유부녀 킬러’ 무진성, 이은샘 실체에 심쿵 “난 강한 여자한테 흔들려요”
    • 11:14
    • 조회 852
    • 기사/뉴스
    2
    • 정신과 교수가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표현하는 데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jpg
    • 11:13
    • 조회 2635
    • 이슈
    23
    • 맷데이먼 미쳣나 이거 송강호 멀리 사라지는군요 사건이잖아 개웃김
    • 11:11
    • 조회 856
    • 이슈
    2
    • 어제 일본성우 인라보던 오타쿠들이 경악한 이유.jpg
    • 11:08
    • 조회 1396
    • 유머
    7
    • 현재 전국 날씨
    • 10:59
    • 조회 4873
    • 이슈
    37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