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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중국산'에 줄을 설까

무명의 더쿠 | 07:50 | 조회 수 4938
xaDhdy

지난해 겨울, 중국 쓰촨성 청두의 한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매년 설경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 지역이지만 이상 고온으로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상식적인 대처 방법은 축제를 취소하거나 다른 콘텐츠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 관광 당국과 주민은 마을 전체를 의료용 솜으로 덮어 가짜 스노빌리지를 만들었다. 현장을 찾은 관광객은 이를 받아들였을까. 당연히 아니다. 황당한 ‘짝퉁 설경’ 해프닝은 결국 티켓 대량 환불 사태로 막을 내렸다.

문득 중국 특파원을 지낸 선배가 한 말이 떠올랐다. “중국인의 무서운 점은 돈이 된다면 뭐든 가져다 쓴다는 거야. 그리고 그게 거기선 너무나 당연하다는 거지.” 어쩌면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은 단순히 경제 정책 방향이 아니라 중화권 국가의 문화적 본능일 수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사고방식. 가짜 눈만이 아니다. 중국은 오랫동안 세계의 것을 베껴 변형하고, 자기식으로 재조립해 왔다. 한때 세계는 이를 비웃었다. 값이 싸서 샀더라도 ‘메이드 인 차이나’ 태그는 숨기고 싶던 시절이다.


지금은 어떨까. 많이 달라졌다. 가격보다는 소비자 태도가 특히 그렇다. 최근 서울 강남에 1호점을 연 중국의 밀크티 브랜드 ‘차지(Chagee)’ 매장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선 풍경은 꽤 상징적이다. 명품 브랜드 디올을 연상케 하는 패턴, 스타벅스를 닮은 로고, 샤넬 느낌의 서체까지. 로고 디자인부터 글로벌 브랜드의 상징을 각각 교묘하게 가져와 짜맞춘 느낌이다. 예전 같았으면 ‘조악한 짝퉁’으로 받아들였을 조합에 MZ세대는 흥미로운 시선을 보낸다. 한 아이돌 멤버가 “맛있다”고 SNS에 올린 뒤엔 구매 인증샷까지 줄을 이었다. 지난해 중국 캐릭터 ‘라부부’ 열풍도 그랬다. 한정판 키링을 사기 위해 매장을 순례하고, 당근마켓에선 웃돈까지 붙었다. 더 이상 중국 상품의 소비를 숨기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까지 든 게 사실이다.

변화의 기저에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가 있다. 알고리즘 속에서 자란 세대는 국적보다 재미를 먼저 본다. 직관적으로 흥미로우면 소비하고, 사진이 잘 나오면 공유한다. 숏폼 세계에선 윤리적 거부감이나 문화적 거리감이 들어설 자리는 많지 않다. 젊은 층 사이에서 쓰는 ‘중티’(중국 티)라는 유행어에도 딱히 비하의 뉘앙스는 찾기 힘들다. ‘카피 캣’ 문화는 숏폼 시대에는 오히려 흡수력과 밈에 대한 빠른 감각으로 작동한다. 원산지보다 속도가 중요해진 시대기 때문이다.

무비자 정책 이후 대중화된 중국 여행도 이런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MZ에게 중국은 더 이상 ‘장가계 효도 관광’의 나라가 아니다. 상하이에선 화려한 중국식 전통 의상과 메이크업을 받은 채 인플루언서처럼 사진을 찍는 ‘왕훙 체험’을 즐기고, 충칭에선 중국 기사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도로를 질주하는 영상을 너도나도 찍어 올린다. 날것의 재미를 주는 중국 배경의 콘텐츠가 일종의 유희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옥을 찾아서’가 중국 드라마 최초로 국내 넷플릭스 인기 순위 톱10에 오른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이런 유행이 곧바로 중국 문화의 전면적 부상으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여전히 상당수의 소비자는 중국 콘텐츠에 거부감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불과 10년 전을 생각해 보자. 서울 한복판에서 비야디(BYD)의 전기차를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될 줄 우리는 예상했을까. K팝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세계 중심에 선 한류 역시 과거엔 변방 문화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글로벌 MZ들이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고, 한국식 화장을 배우기 시작했다. 문화는 대개 그런 식으로 스며든다. 거창한 구호 대신 다정하고 무해한 얼굴로.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에만 긴장해온 우리도 이제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10년 뒤 경쟁의 무대가 여전히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의 산업에만 머물러 있을까. 어느새 중국은 취향과 감각의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다. 이들이 어떤 식으로 문화 영토를 더 넓혀 나가려 할지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뭐가 됐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나라 아닌가. 재미만 있으면 출처를 묻지 않는 알고리즘의 시대다. 어쩌면 문화 전쟁은 스크린 속 추천 영상 하나에서 이미 조용히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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