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萬物相)
청소년-대학생들의 말이 갈수록 어려지는 것 같다. 70년대 개발기의 안일 속에서 자란 탓인지, 어엿하게 호패를 찰 나인데도 말투만은 젖냄새를 풍긴다.
우선 어조부터가 어리광조다. 특히 여학생들의 경우 이 점은 심한데, 요즘엔 남학생들의 말투도 여성화하고 있다. 어떤 땐 숫제 연골조(?)라서 듣고 있노라면 겨드랑이 밑이 근질거려온다.
▼유니섹스 풍조가 있어서 그런지, 곱게 자란 남자아이일수록 얼굴도 여성화돼 있고, 말투도 여학생적인 인터네이션에 물들어 있다. 남아에게 요구되던 호연지기의 기상 같은 것은 적어도 요즘의 남학생들의 말투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예컨대, 말을 할 때 공연히 음조에 기복을 너무 둔다든지. 또는 말을 마칠 때 뒤끝을 의문조로 올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이렇게 했거던요…?』 『그것이 너무 너무 좋았거던요…?』
▼뿐만 아니라, 말의 내용도 감각적인 묘사가 지배적이다. 사물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이 부족한 것이다. 매사를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가 아니면 『무지무지 나빴던 것 같아요』로 처리할 뿐, 객관적 관찰에 의한 평론은 보기 힘들다. 이 점은 TV에 간혹 등장하는 사례이기 때문에,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내용에 있어서나 어조에 있어서나 요즘 청소년들의 말은 그 옷차림이나 마찬가지로, T셔츠화하고 있고 청바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치 자기 발언의 사회적인 책임에서 면책받으려는 막내동이의 심리에다나 비유할는지.
▼말의 풍속도는 한 사회의 정신적인 나이테를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말의 유치성은 우리 사회풍조의 어떤 문제점을 반영할지도 모른다. 무엇이 이들을 갈수록 어리광조로 연성화시키고 있는가. 아마도 과보호와 유락 위주의 청년문화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는지. 국어교육은 마땅히 어문교육뿐만 아니라, 말하는 법의 교육을 포함해야 할 때가 되었다. 우선 남아의 근엄함과 씩씩함부터 그들의 말투에 다시 심어주어야 할 일이다.
(조선일보, 1984년 8월 28일 기사)
-1981년에도 '「모성사회」의 병리'라는 제목으로 이른바 '유약한 청소년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보면 이때의 사회상이 대충 짐작이 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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