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사라 믿고 빌려줬는데…" 9억 재산 숨기고 회생 신청해 '빚 탕감'
의사라는 직업적 신용과 병원 매출을 앞세워 거액을 끌어모은 뒤, 회생 제도를 악용해 빚을 털어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도 9억 원대 재산을 빼돌리고 허위 채무를 꾸며내 회생을 신청한 의사가 재판에 넘겨지는 등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돕기 위한 회생제도가 강제집행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창원지검 마산지청은 지난달 24일 의사 김모씨를 채무자회생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병원장인 김씨가 회생을 신청하면서 이미 지급이 끝난 컨설팅 비용 7,800만 원을 채무로 거짓 신고하고, 가족 계좌와 현금 인출 등을 통해 약 9억8,000만 원 상당의 재산을 숨긴 혐의가 있다고 봤다. 회생절차를 악용했다고 본 것이다.
사건은 김씨가 병원 운영자금 명목으로 주변에서 11억5,000만 원을 투자·대여받으면서 불거졌다. 김씨는 "병원이 곧 잘될 것"이라는 취지로 돈을 빌렸지만, 병원 경영이 회복된 뒤에도 이를 돌려주지 않았고 결국 민사소송으로 이어졌다. 채권자가 소송에서 이긴 뒤 강제집행에 나서려 하자, 김씨는 2022년 5월 간이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검찰은 김씨가 회생절차에서 허위 채무를 포함하고 재산을 숨겨 변제 능력을 축소했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당시 금융기관 대여금과 일반 대여금 채권 등의 원금 및 개시 전 이자 중 45%를 면제받고, 나머지 55%를 2024년부터 2032년까지 나눠 갚겠다는 취지의 변제계획을 법원에 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이미 지급이 끝난 컨설팅 비용 7,800만 원이 허위 채무로 포함됐고, 병원 수익금을 가족 명의 계좌로 옮기거나 현금으로 인출하는 방식으로 약 9억8,000만 원 상당 재산이 누락·은닉됐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날 선고 재판이 있었던 '렛미인' 출신 성형외과 의사 사건도 '회생 제도'를 악용한 대표적 사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오세용)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의사 이모씨에게 징역 3년, 오모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 "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거짓말을 해서 차용금을 교부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돈을 빌린 뒤에는 개인회생 절차를 밟았고, 현재는 채무 상당액을 탕감받은 상태다. 이 사건 외에도 의사라는 직업 안정성과 병원 매출을 앞세워 보증·차용을 요구한 뒤 회생절차로 채무를 조정받은 혐의 등으로 서초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 있다.
"돈 잔뜩 빌려놓고 회생 신청해 탕감... 채권자는 운다"
회생·파산 제도는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진 채무자에게 재기 기회를 주기 위한 장치다. 채무자가 갚을 수 있는 범위에서 채무를 조정받아 경제활동에 복귀하도록 돕고, 채권자도 법원 절차 안에서 변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문제는 이 제도가 마산지청 사건들처럼 채무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채무자는 회생절차를 통해 빚을 줄인 뒤 숨겨둔 재산이나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영업을 이어갈 수 있는 반면 조정된 채무는 고스란히 채권자의 손실로 남는다. 채권자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악용 여부를 걸러내기도 쉽지 않다. 회생절차는 기본적으로 채무자가 제출한 재산·채무 자료를 토대로 진행된다. 가족이나 특수관계인 명의 계좌·거래가 얽혀 있으면 법원이 모든 자금 흐름을 확인하기 어렵고, 결국 피해 채권자가 직접 자료를 찾아 이의를 제기하거나 별도 형사절차로 다퉈야 한다. 이동우 법무법인 지름길 회생 전문 변호사는 "결국 의심 거래, 회생 상황에 대한 법원과 회생위원의 검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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