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난에 세입자 협상력 약화
도배·입주 조건까지 집주인 우위
공급 급감에 임대차 물건 '뚝'
서울 전세심리 3년여 만에 최고
# 서울 강서구에서 최근 빌라 전세를 구한 김모씨는 집주인의 '갑(甲)질'에 대해 토로했다. 전셋집 이전 세입자가 집을 다 빼고 나니 처음 집을 둘러볼 때는 찾지 못한 곰팡이가 벽면에 잔뜩 피어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집주인에게 벽에 곰팡이가 있으니 도배를 새로 해달라고 했지만, 집주인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전셋집이 품귀 상태인데다 당장 다른 집을 구할 수도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자비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전세난이 심해지자 빌라(연립·다세대), 아파트 가릴 것 없이 집주인이 우위인 시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2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세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면서 김씨와 같은 사례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한 사례자는 가족이 사정이 생겨 잠깐 사례자의 집에 머물게 됐는데 이를 안 집주인이 '관리비를 더 내라', '계약할 땐 혼자 살기로 해놓고 여럿을 들이면 어떻게 하느냐' 등 사례자를 간섭하기 시작했다는 사례도 전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은 비단 빌라 시장에만 국한되는 게 아닙니다.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엔 집주인이 세입자의 자격을 제한해 집을 구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네이버부동산과 현지 부동산공인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전세 물건에는 1990년 이후 출생한 30대 초반 신혼부부만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자치구에서는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조건, 비흡연자 등 조건을 내건 곳도 나왔습니다. 신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을 깨끗하게 사용한 세입자를 선호하는 집주인이 늘어난 셈입니다. 일각에선 고령층이나 장애인 가구 등 사회적 약자를 세입자로 받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부동산 시장에 공급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집주인 우위'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 22일 기준 올해 서울 공급 물량은 4165가구에 그쳤습니다. 내년엔 1만306가구, 2028년 3080가구, 2029년 999가구 등으로 서울 적정 수요 4만6493가구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빌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1분기 서울 빌라 입주 물량은 1355가구로 집계됐습니다. 5년 전인 2021년 1분기(6004가구)의 22.6% 수준입니다. 10년 전(1만2548가구)와 비교하면 9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착공 물량도 올 1분기 기준 1499가구로 5년 전인 4059가구, 10년 전인 1만1080가구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착공 물량은 통상 3~4년 후 입주 물량으로 이어지는데 공급 부족 상황이 계속될 것이란 의미입니다.
공급 부족과 규제 영향, 집주인의 보유·임대 전략 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기존 임대차 물량도 가파르게 줄고 있습니다. 아실에 따르면 서울 전·월세 물건은 연초 4만4424건에서 3만3448건으로 29.9% 급감했습니다. 서울 구로구 전·월세 물건이 해당 기간 60.5% 급감했고, 송파구도 54.2% 감소했습니다. 노원구, 도봉구 등도 각각 51.7%, 51.4% 줄어 절반 이상 감소했습니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24곳에서 임대차 물건이 줄었고, 서초구만 43.4% 늘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시장 전문가는 "과거 2020년께에도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시장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며 "공급 부족이 심해질수록 이런 현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통계에서도 '집주인 우위' 시장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토연구원의 부동산시장 소비자심리조사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의 전세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19.4로 2021년 9월 121.4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지수가 100을 넘으면 100을 넘으면 전세시장 상승 국면으로 해석됩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15/0005291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