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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일제강점기로 온 ‘반야’…민중의 고군분투 그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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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6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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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화 연출, 심은경·조성하 주연의 ‘반야 아재’는 손상규 연출, 이서진·고아성 주연의 ‘바냐 삼촌’(5월7~31일 엘지아트센터 서울)과 완전히 달랐다. 지난 22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한 ‘반야 아재’(31일까지)는 1899년 러시아 초연 당시 안톤 체호프 원작의 큰 줄거리를 유지하면서 배경을 일제강점기인 1939년 충북 영동군 황간면 정미소로 옮겨왔다. 원작의 인물과 배경을 그대로 가져온 ‘바냐 삼촌’과 달리, 젊은 시절 반야사로 출가했던 박이보(조성하)를 극 중 “이보 삼촌” “반야 아재”로 부르며 주인공 이름의 흔적만을 유지했다. 바냐의 조카 소냐는 서은희(심은경)로, 소냐의 아버지이자 극 중 갈등을 유발하는 세레브랴코프 교수는 보성전문에서 은퇴한 교수 서병후(남명렬)로, 그의 젊은 아내 옐레나는 성악을 전공한 신여성 오영란(임강희)으로 바뀌었다.

배경과 인물만이 아니다. ‘바냐 삼촌’이 이서진의 ‘생활 연기’와 고아성이 건네는 위로의 말에 집중했다면, ‘반야 아재’는 극 중 인물의 관계와 이들이 직면한 현실을 드러낸다. 일제의 수탈과 신문물의 도래 속에서 개인의 미래, 조국의 독립, 사업의 성공도 불확실하지만 나름 고군분투하는 지식인과 청년, 서민의 불안과 힘겨움을 주요하게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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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물림으로만 시대의 변화를 읽어낸 교수는 특별한 수요도 없는 황간에 정미소를 운영하자고 해 가족을 노동의 질곡에 빠뜨리지만, 정작 책임은 회피한다. “시대를 읽으며 기꺼이 변화해야,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외치지만, 실상은 가족을 통제하기 위해 자신의 병마저 악용하는 위선적 인물로 그려진다. 이보의 어머니 양말례(손숙)는 겉멋 들고 지식인이 되고픈 열망에 사로잡혀 죽은 딸의 남편인 교수를 칭송하면서도 정작 50살이 넘도록 정미소를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져온 아들에겐 “누가 시켰어? 네 누나가 힘들어하니까, 네가 맡겠다고 나섰잖아!”라고 타박하고 무시한다. 반야 역시 젊은 시절 계몽사상에 심취해 다른 미래를 꿈꿨지만 다시 돌아와 평생 노동에 시달리다 이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늙수그레한 불평불만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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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모두 현실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만 뾰족수가 없다. 서로 탓하며 상처를 줄 뿐이다. 은희와 유모 마점점(정경순)만 자기 객관화가 가능한 인물이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 사랑받지 못하는 설움을 삭이며 제 몫을 묵묵히 해내고 이보 삼촌의 노동과 헌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은희, 수시로 찾아드는 일본 순사를 상대하며 궂은 일을 도맡는 유모를 강인하고 지혜로운 인물로 그리며 좌충우돌하는 집안을 굳건히 지켜내는 중심축으로 삼는다.

조광화 연출은 “우리 역사에서 청년은 나아갈 바를 모르고 나이 든 사람은 평생 노력해온 일이 무용지물이 되고 무력감에 시달린 가장 상징적인 시대가 일제강점기 아닐까 싶었다”며 “요즘도 인공지능, 전쟁으로 내가 알던 것이 의미 없어 보이지만, 새로운 문화를 어설프게 받아들이면 결국 변화하려 하지만 노동에 끌려다니는 삶이 된다는 것, 그런데도 계속 일해야 하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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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장치도 돋보였다. 드넓은 대극장 무대 중앙에 연못과 그 위 누마루를 설치하고 극 중 인물의 심리에 따라 수시로 회전시켜 관객에게 입체감, 원근감, 몰입감을 더했다. 비가 심하게 내리치는 가운데 반야의 고뇌, 의사를 사랑하는 은희와 새어머니의 대화 등을 배치해 인물의 심경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후반부 정미소의 미장센은 압권이다. 높고 넓은 공간을 꽉 채운 정미소 도정 설비가 실제 작동하고, 반야 아재가 배출구에서 쏟아진 쌀겨더미에 깔리는 장면은 노동의 힘겨움을 상징한다.

은희는 고통스러워하는 반야 아재를 위로하며 “힘겨운 낮과 기나긴 밤들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하루하루 살아가요. 업보라 여기고 (…) 한발 한발 걸어가요. 우릴 바라보는 가족을 위해, 휴식 같은 거 바라지 말고, 지금도 늙어서도 일하기로 해요. (…) 도망가지 말고, 살아가요”라고 말한다. 위로보다 노동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심은경은 “은희 본인도 도망치고 싶지만 살아내는 것,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작은 걸음이라도 함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인물로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했다.


https://naver.me/xLNsQYW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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