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년국치>
청나라 말기였던 1839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는 1949년까지의 기간
중국인들은 이 110년의 기간을 백년국치라고 부름
2천년 이상 동아시아의 패권국이었던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받고 굴복했던 역사상 최약체 시기

1839년 ~ 1842년 - 제 1차 아편전쟁과 난징 조약
본격적인 서구 열강 침략의 시발점이자, 동아시아 패권국이었던 중국 몰락의 시작

1850년 ~ 1864년 - 태평천국의 난
중국 안에서만 발생했던 내란인데 최소사망자만 2천만명, 최대사망자는 무려 7천만명 가까이 예상된다는
숫자만 보면 제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를 뛰어넘는 세계사로 봐도 손꼽힐 규모의 거대한 내전
참고로 제 1차 세계대전의 경우 실종자를 사망자와 합산하여 계산하더라도 피해 규모가 2천만명 남짓임


1856년 ~ 1860년 - 제 2차 아편전쟁, 아이훈 조약, 원명원 약탈 및 방화, 베이징 조약
청나라 역사상 최초의 베이징 함락
아이훈 조약과 베이징 조약으로 인해 중국은 영구적으로 외만주 지역을 상실하고 동해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잃게 됨
외만주는 지금의 연해주, 하바롭스크 등 한반도 북부 만주 지역 중 러시아의 영토인 곳들을 말함

1894년 ~ 1895년 - 청일전쟁, 시모노세키 조약
변방의 오랑캐로 취급했던 일본 "따위"에게 패배하며 청나라는 조선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됨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인해 청나라는 요동 반도와 대만을 일본에게 할양하고 이곳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함

1899년 - 의화단의 난, 신축 조약
청나라 멸망의 쐐기를 박는 사건. 2번째 베이징 함락. 청나라 내부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는 계기가 됨

이후 청나라가 멸망하고 각종 군벌들이 할거하며 근대판 전국시대가 개막하게 됨

1931년 ~ 1932년 - 만주사변
그러던 중 만주를 일본한테 통채로 털리고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이 세워짐

1937년 ~ 1945년 - 중일전쟁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전면전
난징 학살도 이때 발생했고 8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누적사망자만 무려 2200만명이 넘음

1945년 ~ 1949년 - 제 2차 국공내전
제 1차 국공내전까지 합하면 누적된 민간인 피해만 500만명
여기서 국민당이 패배하고 대만으로 쫓겨가게 되면서 중국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짐
중국인들에게 이 백년국치 기간은 굉장한 트라우마로 남아서


중국의 강경적 외교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나옴
백년국치라는 이름의 근대 서방의 간섭 개입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가 남은 중국인들은 무질서, 분열과 침탈, 즉 중국의 분열 및 붕괴에 대한 공포로 상당수가 이를 중공의 집권 대의명분으로 악용한 중국 공산당의 일당 독재 통제에 대한 내부 인권 탄압의 문제와 중국 민주화 운동, 부패상에서 눈을 돌리는 큰 부작용을 낳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백년국치라는 역사관이 "우리는 청나라 때 백년국치라는 심한 굴욕을 당했고 서구 오랑캐들은 우리 중화의 정체성을 흐뜨려놓았다. 민족의 정기를 되찾고 다시 중화를 세계의 중심으로 놓자"라는 논리로 연결되며 전랑외교와 하나의 중국으로 대표되는 중국판 대동아공영권 정책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과거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에 의해 받은 치욕을 되갚기 위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새로운 시대의 제국주의 열강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중국판 팔굉일우로 귀결되고 말았으며, 전 세계에 중국 위협론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