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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협
문신, 유학자, 문장가, 비평가. 본관은 신 안동 김씨.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삼주(三洲),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김상헌의 증손자이며, 김수항의 둘째 아들이다. 바로 아랫 동생인 김창흡과 함께 '농연'으로 불린다.
오진주에게 출가했던 셋째 딸 김운(金雲, 1679 ~ 1700)을 특히 아꼈던 것으로 보인다. 부친 사사 후 은거하던 김창협에게 유일한 즐거움을 주었던 딸이다. 당시 10대 초반의 김운은 영민하여 김창협에게 글을 배우고 말벗의 역할을 해주었다. 큰 할아버지인 김수증과 작은 아버지 김창흡도 김운을 아껴 여자 선비로 대우하였다고 한다. 출산 후 젖병으로 22세에 사망하였다. 김창협이 일가의 일찍 죽은 여성을 위해 묘문을 지었는데, 김운이 당시 그 글을 보고 '이 사람은 그래도 우리 아버지의 문장을 얻어 그 이름이 영원히 전해질 것이니, 죽음이 불행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김창협은 그 말을 기억하고 비통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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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주와 김운의 아들은 월곡(月谷) 오원(吳瑗, 1700 ~ 1740)으로 백부 오태주(吳泰周, 1668 - 1716)의 아들로 출계되었다. 29세에 문과 장원 급제 후 대사간, 대사성, 승지 및 대제학을 역임하였는데 공조판서 재임 중 갑자기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