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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LA교민들 “5·18 때 광주에 의용군 보내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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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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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전 오월의 광주는 말 그대로 '고립무원'이었습니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에 저항하며 들고 일어난 광주의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걸 막기 위해 이른바 '봉쇄 작전'이 펼쳐졌습니다.

외부와의 전화가 끊기고, 다른 지역을 오가는 도로도 차단됐습니다. 광주의 참상을 알리는 국내 신문과 방송 기사는 신군부의 검열로 묻혔습니다.


■1980년 5월, LA 교포들 "광주에 의용군 보내려했다"

"광주에 의용군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이갑산 범시민단체연합 대표는 지금까지 광주 사람들이 들어본 적 없는 말을 했습니다. 1980년 5·18 때 LA 교포들이 의용군을 조직해 광주로 가서 계엄군에 맞서 싸우려 했다는 겁니다.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대표는 그때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한국민주학생총연합회(Koren Student Associationfor Democracy: KSAD) 대표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의용군'에 대해 더 자세히 물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있었으면 광주에서 죽었을 거 아 니냐. 이제 이런 소위 격한 반응들이 다 토론하다가 야 그건 뭐 저기 다 죽고 있는데 우리도 저쪽에 가서 죽었다고 하자. 이제 이런 얘기가 우리 스스로의 격한 감정이 이제 솟아나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광주에 의용군을 한 번 보내는 건 어떠냐. 모집을 한번 해보지 뭐. 좋다 모집하자.

이갑산 대표가 1980년 LA 적십자사가 있던 자리에서 당시 헌혈 시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갑산 대표가 1980년 LA 적십자사가 있던 자리에서 당시 헌혈 시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대표는 LA지역에서 발행되던 교포 신문, 신한민보에 광고를 냈고 지원자들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기억합니다. 그렇게 꾸려진 '의용군' 지원자가 모두 17명. 하지만 LA 총영사관이 비자 업무를 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방해했다는 게 이 대표 주장입니다.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학생들은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데,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LA 총영사관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오래된 일이라 관련 기록이나 자료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변홍진 전 미주 한국일보 기자는 학생들이 칭한 '의용군'을 '구조대'로 기억했습니다.

구조대를 보내야 된다고…의용군은 아니고 ‘구조대’를 벌이고 같이 가서 우리도 시위를 하자.그래갖고 그때 그 사람들도 모집한다고…그때 뭐냐하면 계엄 사태이기 때문에 공항에 들어가는 게 좀 힘들다 그런 얘기도 나중에 나오고 그랬어요.

■LA 적십자 점거 농성… "광주에 피를 보내주지 않으면 못 나간다"

의용군 파견이 가로막힌 학생들은 광주를 도울 다른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광주에 사상자가 많아 피가 부족하다는 얘기가 들려왔고, 집단 헌혈을 하자는 데 의견이 모였습니다. 한국에서 유혈 사태가 있음을 국제사회에 알리기에 적절한 방법이었습니다. 헌혈 호소문을 만들고 거리에서 확성기 방송으로 교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1980년 5월 24일 아드모어 공원에서 시작한 시위는 집단 헌혈로 이어졌습니다.

의용군 문제가 무산되면서 그러면 우리가 광주에 피 흘린 사람들과 동참한다는 의미 그러니까…우리도 함께 거기서 피 흘린 사람이라고 하는 상징이 헌혈이다. 그것 밖에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면 아 내일부터 우리가 헌혈 운동을 시작을 하자. 그리고 광주로 피를 보내자.

1980년 5월, 당시 미국 ABC 뉴스 화면 갈무리(화면 출처: 미국 ABC방송, 제공:장태한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 교수)

1980년 5월, 당시 미국 ABC 뉴스 화면 갈무리(화면 출처: 미국 ABC방송, 제공:장태한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 교수)


약 5백 명이 헌혈을 하려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한인들 사이에서 헌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던 상황에서 놀라운 숫자였습니다. 당시 헌혈카드 명단에는 한인사회에서 원로 대접을 받던 79살의 김상돈 전 서울시장도 포함된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체중 미달이나 나이, 건강상의 이유로 절반가량이 피를 뽑지 못하고 최종 헌혈자는 230명입니다. 헌혈 참가자들은 피를 보낼 곳으로 모두 'Korea, Kwangju'로 적었습니다. '피를 광주로 보내주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 집단 헌혈은 LA적십자사 점거농성으로 이어졌습니다. 헌혈 농성을 주도했던 양필승 목사는 현장에서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말고 누가 광주에 있는 동포들을 구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다. 나중에 죽은 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다 하자". 즉흥적으로 보였지만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1980년 LA 헌혈 운동을 주도한 양현승 목사가 5·18기념재단에 LA 헌혈 시위 관련 기록물을 기증하고 인터뷰하고 있다

1980년 LA 헌혈 운동을 주도한 양현승 목사가 5·18기념재단에 LA헌혈 시위 관련 기록물을 기증하고 인터뷰하고 있다


혈액원 원장 노만 키어(Norman Kear) 만나서 간단히 의논했어요. '내가 살던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이분 눈빛이 달라지더라고요.' 적십자에서 헌혈하는 과정을 통해 광주 사태를 알리고 싶고 가능하다면 신군부에 맞서서, 그들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이분이 스마우스(Smouse)라는 적십자사 직원 분에게 '네가 모든 과정을 적십자사에 보고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 보고문은 5월 22일부터 쓰였지만, 그전부터 저와 쭉 의논을 하고…

5월 24일에 시작된 점거 농성은 5월 27일까지 사흘간 이어집니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은 미국 적십자 본부가 국제적십자위원회와 대한적십자사에 보낸 전문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긴급' 전문에는 한국 학생들이 본인들이 기증한 피를 광주의 희생자들에게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광주에 피가 필요한지 최대한 빨리 답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 적십자사는 다음 날인 5월 25일에도 대한적십자사에 전문을 보내 빠른 답신을 요구했지만 당시 대한 적십자사 이호 총재는 "현재의 상황에서 피 공급은 광주의 수요량에 비해 적절"하다고 답합니다.

■"광주를 살리지 못했다" 자책감 속 LA 교포 사회 '민주화 바람'

결국 피는 광주로 보내지지 못했습니다. 광주는 5월 27일 새벽, 최종 진압됐고 LA 헌혈 농성자들도 격론 끝에 해산합니다. 농성자들은 계엄군 진입을 막지 못했고, 전남도청에서 최후 항쟁을 벌이던 시민군을 결국 살리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무기력감이 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농성을 더 끌어갈 힘은 부족했습니다. 당시 UCLA 학생으로 농성 시위 대변인을 맡았던 장태한 교수의 말을 들어봤습니다.

끝내느냐 마냐를 놓고 계속 논쟁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들 목적이 유혈 사태에 대해서 인도주의적인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가 무력 시위나 이런 거를 하면 우리가 한 행동이 퇴색이 되지 않느냐 이런 여론이 더 높아서 월요일 자진적으로 해산을 한 거죠.

LA 헌혈 농성은 미국 한인사회에도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장태한 교수는 한국 정부, 영사관 중심으로 굴러가던 한인 커뮤니티가 민주화됐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철저한 탄압과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그런 움직임들이 생기고 통일 운동도 시작이 되고, 그리고 나중에 윤한봉 선생이 오시면서 청년들을 모아서 '한청련'이라는 조직도 만들고 그래서 상당한 변화가 시작이 된 거죠. 일종의 저항의 시발점? 저는 그렇게 봅니다.

당시 헌혈 농성에 참여했던 양필승 전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그 일을 'Blood Push'라 부릅니다. 그는 시위를 주도한 양현승 목사의 친동생이기도 합니다. 양 전 교수는 '5·18 LA적십자사 점거와 헌혈 압박(blood push):한민족 민주화 운동의 세계화'란 짧은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논문에는 당시의 생생한 상황이 기록돼 있습니다. 양현승 목사와 양필승 전 교수는 지난 4월 13일 5·18 기념재단을 찾아 1980년 5월, LA에서 광주를 도우려 했던 기록들(각종 서류와 편지, 사진 , 헌혈 카드, 당시 신문 등)을 기증했습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날아온 양현승 목사는 '한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혹시 분실할까봐 짐칸에서 눈을 못 떼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다'고 할 만큼 40년 넘게 보관한 소중한 자료입니다. 지금은 사업가로 변신한 양필승 전 교수는 자료 기증을 하며 역사가의 사명을 얘기했습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218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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