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후국을 자처한 호칭강등, 실수인가 의도인가
누리꾼들은 이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대한민국 국격을 깎아내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민국 궁궐에 불을 세 번이나 지르는 억지 설정을 넣고, 한복 입기를 거부하는 여주인공을 ‘쿨’하게 묘사하며, 대한민국 왕실에서 중국 브랜드 만년필을 쓰고 있다는 등의 예를 들어 이 드라마가 동북공정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결정적 고증오류는 바로 극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호칭 강등’이다.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국격을 ‘황제국’으로 격상시켰다. 만약 21세기 현재까지 왕실이 존속하는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이라면, 당연히 제후국(조선)의 예법이 아닌 자주독립국인 황제국(대한제국)의 호칭과 예법을 계승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21세기 대군부인’은 마치 중국 황제의 통치를 받는 신하국으로 시계를 되돌린 듯, 철저하게 제후국의 호칭만을 골라서 사용하는 촌극을 벌였다.
극 중 이안(변우석 분)의 작위인 ‘대군’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자주독립국인 황제국에서 황제의 형제나 아들은 ‘친왕(親王)’으로 봉해진다. ‘대군’은 제후국 왕의 적자에게만 쓰이는 호칭이다. 그러므로 사실 이 드라마 제목 그 자체이자 주인공 성희주(아이유 분)의 정체성이 가장 큰 역사왜곡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이안과 혼인한 성희주는 ‘대군부인(부부인)’이 아니라 ‘친왕비(親王妃)’로 불렸어야 마땅하다. 대비(공승연 분) 역시 황제국의 ‘황태후’로 불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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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얄팍한 역사 인식은, 글로벌 스타로 추앙받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들의 커리어에 생채기를 남겼다. 또 글로벌 OTT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되는 한국 콘텐츠 역사에 뼈아픈 오점을 남겼다.
드라마는 허구의 예술이지만, 그 허구가 역사적 실재와 국가의 근간을 다룰 때는 마땅히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 제작진은 대체 역사물이라는 장르적 방패 뒤에 숨어,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이것이 ‘21세기 대군부인’ 제작진의 안일함이 어느 때보다 매섭게 질타받는 이유다.
화려한 캐스팅과 화제성에만 매몰돼 역사적 고증이라는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21세기 대군부인’의 씁쓸한 퇴장은, 향후 대체 역사물을 표방하는 모든 제작진이 뼈저리게 새겨야 할 반면교사가 됐다.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마지못해 털어낸 듯한 사과문 한 장으로, 이미 훼손된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자존심이 회복될 리 만무하다.
강주일 기자 joo1020@kyunghyang.com
https://v.daum.net/v/20260516212915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