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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엄빠 찬스’가 가른 운명…상속, 계급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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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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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富로 갈리는 삶의 출발선

교육·결혼·육아·주택구입 등 영향

‘동질혼’의 증가로 상속주의 고착화

 

상속은 민감한 주제다. 세금 문제가 특히 그렇다. 이미 세금을 내고 축적한 부를 물려줄 때 또다시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서 저항감이 크다. 그래서 상속은 대체로 논쟁적이고, 의도적으로 회피되는 주제 중 하나다.

마찬가지로 가족의 부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은 이러한 ‘상속세’ 논쟁 속에서 오랫동안 외면돼 왔다. 그 결과 대중은 재능 없이도 유명 런웨이를 활보하는 ‘네포 베이비’(권력·재력을 가진 부모 덕분에 기회를 얻거나 성공한 자녀)를 향해 손가락질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력서에 ‘엄빠 찬스’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간과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일라이자 필비는 신간 ‘상속계급사회-부모 찬스는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에서 21세기 경제의 진짜 이야기는 ‘가족의 부’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부모의 시간과 지원, 소위 ‘엄빠 은행’은 자녀의 직업적 성공 혹은 재정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더 나아가 성인기의 기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꼭 갖춰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저자는 “45세 미만 인구 집단은 이 상속 시대에 나고 자랐다”면서 “MZ(밀레니얼+Z) 세대는 ‘부모 ATM기를 사용할 수 있는 집단’과 ‘그런 ATM기를 사용할 수 없는 집단’으로 나뉜다”고 말한다.

영국의 경우 약 5조5000만 파운드(약 9350조원), 미국에서는 최대 84조 달러(10경9200조원)에 이르는 부가 ‘베이비부머’(1942년~1965년 출생)에서 ‘밀레니얼 세대’로 상속될 것이란 통계는 상속이 시급한 당면 문제 중 하나임을 상기시킨다. 핵심은 오늘날 경제가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는 부에 점점 더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상속이 부유한 특정 계층에만 국한된 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능력주의’를 믿는 현대 사회의 이면에 ‘상속주의’가 다음 세대의 부의 격차를 늘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여기서 말하는 상속주의는 단순히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고, 집을 사주고, 생활비를 보태주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높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결혼 후 돌봄을 지원하며, 여기에 실패하더라도 언제나 돌아갈 곳이 되어주는 등 부모가 줄 수 있는 모든 경제적·심리적 안전망이 포함된다.

이러한 상속주의가 영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 배경은 베이비부머의 자산 축적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후 경제 성장과 부동산 가격 상승, 연금 제도의 임금 상승의 혜택을 누린 이들은 역사상 가장 큰 자산을 보유한 세대다. 반면 밀레니얼의 상황은 정반대다. 졸업장의 가치는 하락했고, 고물가와 임금 정체, 부동산 가격 급등 속에서 부모의 지원 없이는 자립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베이비부머의 자산에 대한 접근성이 밀레니얼의 부의 격차로 직결되는 분야는 바로 대표 자산인 부동산이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른 런던 자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엄빠 찬스’가 필수가 됐다고 말한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돈을 받은 밀레니얼은 그렇지 않은 밀레니얼보다 평균적으로 2.6년 더 일찍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임금만으로는 ‘인(in) 서울’ 자가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한 우리나라 현실과도 비슷하다.

부모의 지원은 20~30대 여성들이 겪는 경력 유지 및 육아에 대한 압박을 완화시키기도 한다. 부모의 적극적 지원이 있는 여성은 주거 불안을 덜고, 커리어도 더 오래 준비하거나 유지할 수 있다. 여기에 부모가 손자·손녀의 돌봄을 대신 맡아주면 여성이 출산과 육아, 살림과 커리어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시기를 버텨낼 여유가 생긴다. 가사와 돌봄을 외주화할 수 있는 능력도 상당 부분 ‘엄빠 은행’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러한 상속 경제가 최근 증가하는 ‘동질혼’에 의해 더 강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부유한 ‘엄빠 은행’을 가진 고학력·고소득의 두 사람이 만나 특권이 강화되고, 동시에 이들의 은행이 합병되면서 ‘부의 대물림’이 더욱 공고해진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계급 내에서 결혼해 자산을 유지했던 중세 귀족의 방식이 사회적 위계에서 낮은 곳으로 더 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베이비부머가 막대한 자산을 갖고 있는 것과, 그것이 밀레니얼에게 고스란히 상속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세대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의문을 표한다. 상속만큼이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돌봄’의 문제 때문이다.

오늘날 베이비부머는 ‘돌봄 의존기’에 들어섰다. 동시에 기대 수명도 늘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을 돌보기 위한 비용을 모두 감당해 주지 않는다. 결국 터무니없이 높은 돌봄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베이비부머가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는 부동산에 묶인 막대한 돈을 쓰는 것이다.

돌봄과 가족, 재정이 중요해지는 ‘제4 생애주기’의 진화 속에서, 가족의 부를 ‘돌봄 비용에 쓸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는 곧 많은 가족이 직면하게 될 문제다. 상속의 규모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상속은 당연한 권리가 아님’을 재차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상속이 금기 주제이긴 하지만, 차가운 경제적 불공정성보다는 대개 사랑과 돕고자 하는 애타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사회문제이며, 따라서 상속세 구간 조정을 넘어 훨씬 더 거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손미정 기자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724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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