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라누드는 현재 자신의 어머니와 상속 자산을 둘러싼 소송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고(故) 차눙 비롬박디 전 회장이 남긴 유산을 두고 갈등이 빚어진 가운데, 시라누드가 학대 사실을 공론화하자 어머니는 그를 ‘배은망덕한 자식’으로 몰아세우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문의 어른들에게 중재를 요청했을 때도 “어머니에게 사과하라”는 권위주의적인 답변만 돌아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시라누드는 “인간성을 존중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며 “세상에 스트레스를 줘서 미안하지만, 이런 사람들과는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유력 가문의 화려한 외벽 뒤에 숨겨진 추악한 민낯은 이미 여러차례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중동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는 여성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BBC와 가디언 등 외신은 일부 공주들이 감금된 상태에서 남성 친족이나 측근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증언을 잇따라 보도했다. 하지만 가해자 역시 막강한 권력을 쥔 왕실 일원인 탓에, 사건은 법적 심판 대신 ‘가문의 수치’라는 명분 아래 철저히 은폐되는 경향이 짙었다.
세계적인 명품 구찌 가문도 마찬가지다. 지난 2020년, 가문의 상속녀 중 한 명인 알렉산드라 구찌 자루니는 6살 때부터 수십 년간 의붓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폭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화려한 재벌가 내부의 끔찍한 범죄 사실만큼이나, 어머니와 할머니 등 가족들이 가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조직적으로 묵인해왔다는 점에서 거센 공분을 샀다.
전문가들은 재벌가가 피해자가 된 사건일수록 일반적인 범죄보다 훨씬 강력한 ‘폐쇄성’이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약점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재벌가의 생리상, 공식적인 판례나 보도로 기록되는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가문의 명예’라는 허울이 범죄의 온상을 키우고 피해자의 입을 막는 거대한 감옥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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