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백화점 직원 화장실은 오후 3시 30분만 되면 칸칸 마다 사람들로 가득 찬다. 장마감에 맞춰 주식 애플리케이션(앱)을 확인하려는 직원들로 몰려서다. 백화점 직원 김모(35)씨는 “팀장님이 오후 3시 30분만 되면 자리를 비우는데, 알고 보니 사무실에서 주가를 확인하기 민망해서 화장실에 가는 거였다”며 “최근 주식을 시작한 뒤로는 매일같이 그러고 있다”고 했다.
지방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최모(59)씨는 요즘 직장에 1시간 일찍 출근한다. 휴게실에서 열리는 이른바 ‘아줌마 리딩방’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최씨는 “같은 시간대에 근무하는 직원들끼리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여 수익률을 공유하고, 종목에 대해 토론하는 게 일상이 됐다”며 “그 모임에서 누가 얼마 벌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나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 투자 열풍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퍼지면서, 주가에 영향을 주는 현상들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초민감’ 동학개미들(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을 이르는 말)이 늘고 있다. 이들이 여론 주도층으로 부상하면서 정치권과 정부의 눈치 보기도 심해졌다는 평가다.
1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법인 주식을 소유한 사람은 1456만명으로 집계됐다. 국민 4명중 1명 이상이 주식투자에 뛰어든 셈이다. 코스피 상승으로 최근 주식 투자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들은 더 급증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지난 4일 기준 1억522만개로 지난해 말보다 693만개 늘었다.
개인 투자자가 늘면서 일상적인 정책이나 정책 입안자의 발언을 모두 주가와 연결시켜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도 잦다. 지난 12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공지능(AI) 기업들에게 거둔 초과세수를 국민들에게 나눠주는 ‘국민배당’을 제안하자 인터넷 주식 토론방에는 비판 글이 쏟아졌다. 김 실장 발언 이후 SK하이닉스 등 관련 대형주 중심으로 코스피 지수가 7% 가까이 급락해서다.
김 실장 발언이 주가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블룸버그 등 일부 외신이 김 실장 발언에 주가를 흔들었다고 지적하자 인터넷 주식 토론 게시판엔 “정책실장이 (SK)하이닉스 하락에 베팅한 것이 아니냐”는 원색적 비난까지 올라왔다. 금융시장과 직접 관련이 없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이날 오후 2시 김 실장을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자본시장은 청년들의 합법적 재산형성 통로인데, 김 실장의 발언으로 인해 자본시장 신뢰가 흔들렸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단체의 일상적 정책 토론이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살해 위협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참여연대 등이 오는 20일 ‘반도체 초과이윤,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긴급좌담회를 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참석자를 살해하겠다는 위협글이 올라와 경찰이 참여연대 사무실로 출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주가에 영향을 주는 일에 대해서 단순히 여론 측면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넘어 직접 행동하는 개인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에 개인 주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21일 총파업을 하면 맞불집회를 열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성과급을 과도하게 주면 기업 이익이 줄어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다.
높아진 개인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정책 방향까지 바꾼다. 정치권에서는 여러 차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도입하려고 했지만, 개인 투자자 반대 여론에 막혀 번번히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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