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희끗한 할머니였어요. 평생 조선소 여공으로 살며 일가를 이뤘단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대구의 4년제 사립대 국어국문과 졸업생. 전공과 관련한 직장은 커녕 정규직 취업도 쉽지 않았다. 계약직을 전전하던 안은지(당시 25세)씨는 우연히 클릭한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 인생의 방향을 180도 돌리게 됐다. 2022년 1년 과정의 충주 폴리텍대학 ‘로봇용접학과’에 뛰어든 게 시작이었다. 10여명의 동기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이 학교 용접과에 입학한 첫 여성이었다.
지난달 30일 울산 HD현대중공업에서 만난 안은지(30) 기사는 “여자든 남자든 전문 기술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폴리텍대에서 조선소 입사에 필요한 용접 자격증 개수 2개를 훌쩍 넘겨 6개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용접기능경기대회 대학부문 동상을 거머쥐며 차곡차곡 기술력을 쌓았다. 그렇게 27세의 안 기사는 HD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 성적 우수 수료생으로 직영 계약직 채용 기회를 잡았고, 1년간 현장 경험을 쌓으며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용접공으로 그가 발령받은 첫 부서는 ‘중형선 자동화 혁신부’다. 생산 현장에서 용접만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투입되는 협동로봇·산업용 로봇의 운영 안정화를 담당하는 부서다. 쉽게 말해 조선소에서 로봇 용접이 새롭게 도입될만한 공정을 발굴해내고, 현장의 숙련공들이 “이런 것도 자동화해달라”고 요청하면 이를 로봇의 언어로 번역해 기술진과 소통하고 시스템화하는 일이다.
마침 회사도 고령 숙련자들의 노하우를 디지털화할 수 있는 중간층 인력 확보가 과제였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회사에서도 단기간에 열정적으로 기술을 쌓은 고급 인력을 단순 현장으로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당시 자동화 전담부서 출범을 추진 중이었고, 안 기사가 발탁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소 생산직이 자동화 전환에 따라 변화를 맞고 있다. 로봇 운영이나 데이터 기반의 품질 관리 역량도 필요해지면서 디지털 이해도와 현장 소통 능력 등이 중요해졌고, 이에 따라 여성 인력이나 젊은 직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조선업의 구조적 인력난이 있다. 2016년 조선업 불황 이후 조선소에서 젊은 남성 인력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조선업 종사자가 대다수인 ‘기타 운송장비 산업 근로자’ 인구 구성에서 최근 8년간 가장 크게 줄어든 연령대는 28~35세 남성 근로자였다. 반면 2018년 이후 60세 이상 정년퇴직한 근로자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27세 이하 근로자 수보다 60세 이상 근로자 수가 더 많은 게 현재 조선업 인력의 특징이라는 분석이다.
조선업계는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동화 로봇이나 협동 로봇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HD현대 산하 조선소는 2025년 12월 협동 용접 로봇을 약 170대 도입했고, 한화오션은 지난해 신축한 특수선 제4공장에 최신 스마트 자동화 설비를 구축했다. 삼성중공업도 올 3월 배관 조립품 제작을 자동화한 ‘파이프로보팹’ 가동을 시작했다. 고령 숙련자와 외국인 노동자 비중은 높고 젊은 노동력은 부족한 가운데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용접 숙련공 뿐 아니라 로봇 오퍼레이팅, 데이터 관리, 디지털 시스템 이해도가 높은 청년층의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란 얘기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선업이 육체노동에서 정밀 제어, 데이터 기반 제조업으로 진화하면서 요구되는 생산직 역량도 달라지고 있다”며 “자동화 설비와 디지털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젊은 인력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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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는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숙련공’이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은 상대적으로 박봉에 남자만 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기술력을 쌓으면 누구든 도전할 수 있게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용접분야 기능사 자격시험 접수자 중 여성은 2022년 392명에서 2024년 675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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