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514974?sid=103
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바야흐로 야구 시즌이다. 그러나 4월 한 달 동안, 응원하는 팀인 롯데자이언츠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관계로 야구 시즌 같지 않은 날들을 보냈다. 우리 팀의 성적은 벚꽃잎 날리는 화창한 봄날이 아니라 뿌연 황사 바람이 거센 봄날이다. 경기를 보고 있으면 황사가 심한 날처럼 눈을 계속 뜨고 있을 수가 없다. 4월의 마지막 일요일, 웬일로 이기는가 싶더니 연장 끝에 무승부로 끝나, 결국 리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야구 예능 <우리동네 야구대장>을 보게 됐다. 은퇴한 야구 선수들(이대호, 나지완, 김태균, 박용택-서울에서 먼 연고지 순)이 출신 구단의 연고지에서 초등학교 3, 4학년 선수들을 직접 선발해 팀을 꾸린 뒤, 실제 리그전을 치르는 프로그램이었다.
리틀 자이언츠, 리틀 타이거즈, 리틀 이글스, 리틀 트윈스, 총 네 팀이 있다. 하필 내가 봤을 때, '리틀 자이언츠'가 '리틀 트윈스'에 지고 있었다. 참고 있던 짜증이 터졌다.
"롯데자이언츠 지는 것도 보기 힘든데 리틀 자이언츠가 지는 거까지 봐야 하냐고."
그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거실에서 남편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와! 헉! 됐다!' 하는 감탄사도. 궁금한 나머지 방안에서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그 프로그램 재밌어?"
"프로야구보다 재밌는데? 리틀 자이언츠 잘해! 지금 무승부야."
남편 반응에 궁금해서 보게 된 야구 예능
잘한다고? 자이언츠의 잘하는 경기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나는 다시 나가 소파 한쪽에 걸터앉았다. 조금 보다가 보니 프로야구와 다른 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던지고 치는 건 생각보다 잘하는데 수비 실수가 많다. 우선 출루했다 하면, 도루(타격과 무관하게 다음 베이스로 진루를 시도하는 것)로 기본 3루까지 간다. 어린 선수들이라 아직 도루 저지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가끔 좋은 수비들이 나와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잘 맞은 타구가 리틀 트윈스의 좌익수에게 잡혀 이닝이 종료되었다. 리틀 트윈스 야수들이 호수비를 한 최진호에게 모여들어 물었다.
"와, 그거 어떻게 잡았어?"
최진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도 몰라."
큰 대회에 처음 나온 어린 선수들의 집중력과 야구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의 처음 열정과 열심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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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이글스의 포수 이효준은 도루를 세 번이나 저지했다. 지난 경기 때 자신의 실수로 울었던 이글스의 임성민 선수는 안타를 잡는 호수비를 보여주었다. 노력한 만큼 실력이 느는 아이들을 보며 참 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 1위인 팀들보다 한 번씩 패배를 맛봤던 팀들의 수비 향상이 더 눈에 띄었다. 그러니까, 못한다는 건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향상될 여지가 아주 많다는 말이다. 해설진들과 야구를 보던 타 구단 감독코치진도 아이들이 야구가 늘었다며 놀라는 모습이 여러 번 나왔다.
야구를 하는 게 즐겁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온전한 초심을 마주한 기분이 들면서 나도 처음 글을 쓰며 재미있어했던 내 초심을 찾고 싶어졌다. 주위 모든 게 글감이라 항상 주변을 살피며 기록하던 모습, 글 쓰는 시간이 즐거워 어떻게든 그 시간을 확보하려 노력했던.
예능을 본 뒤 기사를 쓰면서 이렇게 많은 에피소드를 아쉬운 마음으로 덜어내 본 적은 없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삭제한 에피소드들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한 편을 더 써야 할 것 같다. 다행히 리틀 자이언츠처럼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도 타석에서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뒤늦은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