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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급 복합시설 만든다더니...서울시장 바뀌고 사라진 공동체

무명의 더쿠 | 02:16 | 조회 수 3686

2015년 서울 은평구에 문을 열어 200여 곳의 사회적 기업과 시민단체를 품었던 서울혁신파크는, 2026년 4월 현재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된 채 빈 공터로 남아 있다.

건물이 사라지고 생긴 공터는 물론 남은 건물들 역시 시민의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혁신파크 내 곳곳에는 '출입 금지' 안내문이 걸려 있다. 축구장 15개에 맞먹는 1만 4500평가량의 부지가 단 2년 만에 개발을 기다리는 '값비싼 주차장'이 된 것이다.

비어 있는 공간인데도 CCTV는 빼꼭하게 설치돼 있다. 2026년 1월 1일 기준 부지 내 CCTV는 150대다. 이 가운데 외부에는 24대뿐이고, 나머지 126대는 대부분 비어 있는 건물 내부에서 빈 공간을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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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건물이 철거된 지 수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공사용 방음벽이 서울혁신파크를 가리고 있다. 외부에서 서울혁신파크 내부를 볼 수 없는 구조다.
ⓒ 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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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사장 방음벽으로 막아둔 서울혁신파크 내부.
ⓒ 유지영



흐름을 거슬러 보면, 이 변화는 2022년부터 시작됐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6개월 뒤인 12월, 혁신파크 부지에 60층 랜드마크를 포함한 코엑스급 규모의 '직(職)·주(住)·락(樂) 융복합도시'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대규모 복합문화쇼핑몰, 800세대 공공주택, 서울시립대 캠퍼스가 오 시장의 구상안에 담겼다. 당시 입주해 있던 기업들의 뜻과는 다른 일방적 발표였다.

이듬해인 2023년 10월 말, 서울시는 구상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의 입주 기업을 내보내고 혁신파크의 운영을 종료했다. 부지 곳곳에 적혀 있던 '혁신파크' 명칭은 철저하게 지워졌고, 온라인 홈페이지까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오 시장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2024년 7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타당성 조사에서 '사업성 부족'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같은 해 9월 부지 내 건물 일부를 남기고 먼저 철거작업을 했다. 2025년 2월에는 부지를 4545억 원에 민간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입찰 공고를 냈다.

민간 매각 직전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전문위원 검토 보고서(2024년 11월)는 절차적 문제를 짚으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보고서는 "용도지역 종상향 이후 토지가격 차이에 따른 이익을 민간 사업시행자가 가져가는 사업 방식이 적절한지", "'해당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이익에 맞도록 할 것', '공공가치와 활용가치를 고려할 것'이라는 기본원칙에 부합하는 매각인지 면밀한 검토가 요망된다"고 지적했다. 즉, 토지가격 차익을 민간이 가져가는 매각이 서울시의 이익에 맞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시의원이 다수인 서울시의회는 12.3 윤석열 내란 사태로부터 열흘 뒤인 2024년 12월 13일 혁신파크의 민간 매각을 의결했다.

무리하게 추진된 매각은 시민에게도, 기업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민간 매각은 시민들의 강한 비판에 부딪혔고, 유효한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아 2025년 4월 입찰은 한 차례 좌초됐다. 이후 부지 재매각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다.

인근 주민들은 혁신파크에서 러닝을 하거나 '경도(경찰과도둑) 놀이'를 하는 등 공원으로서 이용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이곳을 '공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서울시는 이 부지를 '구 서울혁신파크'라는 명칭 대신 2010년까지 이 자리에 있었던 질병관리청의 옛 기관명을 따서 '구 국립보건원'으로 부르고 있다. 부지 경계는 공사장에서 쓰이는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혁신파크에서 만난 한 반려견 보호자는 "부지를 둘러싼 방음벽을 없애달라는 민원을 넣었더니 '비산 먼지를 막기 위한 시설이라 불가하다'는 답을 받았다"라며 "그러면 그 안의 주민들은 비산 먼지를 마셔도 된다는 뜻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공원이 사라지는 건 단순히 공간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리듬이 끊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2024년 4월 30일 서울시의회 제323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록에 남은 문답이다. 2023년 혁신파크의 운영 종료 이후 입주사들로부터 임대료를 받지 못하면서, 서울시 행정국 사용료 수입(세외수입의 일부)은 2023년 18억 7천만 원에서 2024년 5억 6천만 원으로 약 69% 줄었다.

입주사를 내보내고 남은 건물에는 2024년 7월부터 은평세무서, 은평시설관리공단, 응암지구대가 '임시 청사'의 형태로 들어왔다. 그러나 은평세무서는 2026년 3월, "연장계약 요청이 불허됨에 따라 부득이하게 새 임시 청사로 이전하게 됐다"며 21개월 만에 짐을 싸서 임시 청사에서 또 다른 임시 청사로 이전했다. 은평세무서에 따르면 2024년 이전 당시 이사비·시설물·전자제품 구입비 등으로 약 1억 1천만 원이, 이번 재이전에 다시 약 8천만 원이 들었다.

은평 지역 정당인 은평민들레당은 "은평세무서 입주는 미래청 단체들을 내쫓고 건물을 방치한 무책임한 행정을 은폐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단기 운영과 재이전이 그 비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라며 "신청사 완공 때까지 임시청사 계약을 연장했더라면 충분히 아낄 수 있었던 시민의 세금"이라고 비판했다. 은평세무서가 떠난 혁신파크 자리는 현재 빈 상태다.


은평세무서 재이전과 관련해 서울시 서부권사업과 담당자는 <오마이뉴스>에 "(2024년 7월) 혁신파크 부지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임시 수요를 조사해 (세무서도) 들어오게 된 것"이라며 " 그간 서울시가 은평세무서 유지·관리 비용을 부담해왔던 것인데, 유지·관리비 부담이 있어 계약 기간 만료 이후 재이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때 200여 곳에 달했던 입주 기업들은 운영 종료 이후 각지로 흩어졌다. 2020년 혁신파크에 입주해 2024년 중순까지 과태료를 내면서 버텼던 한 입주사 관계자는 "당시 서울시 주무관이 퇴거를 요구하면서 '(이 입주사는) 서울시랑 사업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안 나가고 버티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말로 들렸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엔 입주사들 모두 끝까지 버티겠다고 말했지만, 서울시와 사업을 하거나 인허가권이 서울시에 묶이다 보니 퇴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울시와 하는 사업이 없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남은 입주사들에게 서울시는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2024년 7월 서울서부지방법원 1심은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2015년부터 혁신파크와 인연을 맺은 인 이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직후인 2023년, 서울시는 죽다 살아난 입주사들에게 나가라고 했다"며 "약자·소수자를 위한 사회적경제 기업 등의 사업을 해 오던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약자와의 동행'을 말한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입주 기간 동안 혁신파크 공간유지비가 낮았기 때문에 절감한 비용으로 청년 채용을 늘릴 수 있었다면서 "혁신파크에서 나가면서 급하게 사무실을 구해 공간유지비가 6배 가까이로 뛰었다. 공간유지비를 충당하기 위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주는 사회적인 사업보다 당장 돈이 되는 근시안적 사업을 꾸리게 됐다. 결국 그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혁신파크 내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무료 IT 강좌를 여는 등 공익적 활동을 해오기도 했다.

과거 한 입주사 대표였던 이 대표는 "혁신파크를 민간에 매각하면서 공유재산인 부지를 4545억 원에 내놨다. 그건 시 단위로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돈"이라면서 "행정 수요는 사회가 변하면서 점점 늘기 마련인데, 몇 년 뒤 부지가 다시 필요해지면 훨씬 비싸게 사야 한다. 미래 서울 시민들의 재산을 멋대로 처분할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또 "탄소 중립을 외치며 돈을 들여서라도 도심 속 공원을 새로 만든다고들 하는데, 이미 여기엔 공원이 만들어져 있지 않으냐"고도 덧붙였다.


과거 혁신파크에 입주해 있던 사회적 기업 등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이들은 이 공간이 민간 재개발이 아니라 공공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서울혁신파크 인근에 사는 한 청년(33)은 "서울시가 공원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에서 운동하고 산책한다. 근처에 대체할 만한 공간이 없다"라며 "건물을 허물기에 결국 개발이 되나 했는데, 이대로 방치돼 화가 났다. 앞으로 시민을 위한 다양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인동준씨는 "혁신파크는 지방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휘청였던 공간이었다. 지방선거 때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번번이 위태로웠다"라며 "전임 시장 때도 예외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정파적인 이해 관계가 아니라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보는 대계(大計)가 필요하지 않을까. '작은' 정치 때문에 사회적경제 기업이 보는 피해가 막심하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측은 혁신파크 부지의 활용 방안이 정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당분간은 임시 활용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서부권사업과 담당자는 <오마이뉴스>에 "현재 혁신파크 부지는 임시 개방 상태로 산책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활용 방안이 확정될 때까지는 이러한 임시 활용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내부적인 개발 방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부지 개발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은평구청과도 지속적·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활용 방안이 빠르게 정해지길 바라지만 시간이 걸리는 만큼 현재로서는 주민들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파크 부지 출입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관리 인력·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면서도 "공공이 운영하는 시설은 지속적인 관리·운영 책임이 따르기에 안전 관리 계획과 인력 배치가 필요하다. CCTV로 건물 내부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둔 지금, 1만 4500평의 빈 공터는 또 한 번의 선거 앞에 서 있다.



유지영 기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514642?cds=news_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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