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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서 30대 남성이 20년지기 친구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치정도 원한도 아닌 환청과 망상에 따른 범행이었다. 검찰은 가해자 이모(33)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올 2월 1심 재판부는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이씨가 장기간 조현병을 앓았고 약물 치료를 중단한 뒤 증세가 악화한 점이 고려됐다.
23일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둔 유족들은 죗값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 만난 피해자의 부친 임모(67)씨는 “정신질환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범행의 무게를 덜어줄 순 없다”며 “아들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씨는 군 제대 후 조현병을 앓기 시작했다. 증상이 심할 땐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주변 지인들은 그런 이씨를 불편해하며 관계를 끊었지만, 아들만은 “열심히 살려는 친구를 외면할 수 없다”며 곁을 지켰다. 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마지막 게시물도 이씨가 지난해 개업한 치킨집 홍보였다. 둘은 중학생 시절부터 친했다.
비극은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깊은 새벽 임씨에게 다급히 전화한 아들의 사실혼 배우자는 “사고가 났다”면서 덜덜 떨었다. 아들은 그해 12월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임씨는 교통사고로 조금 다쳤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마주한 건 심하게 훼손된 아들의 시신이었다.
이씨의 범행 경위는 검찰 공소장에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2017년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씨는 범행 약 3개월 전 약을 끊었다. 약을 먹으면 졸음이 쏟아져 치킨집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치료를 중단할 경우 환청과 망상이 심해지고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고 의료진이 수차례 경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씨의 증세는 급격히 나빠졌다. 급기야 ‘사람들이 위협하려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이씨는 범행 당일 피해자에게 일곱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자, 다른 지인을 불러 “국가가 나를 음해하고 있다. 대통령을 죽이겠다”고 말하며 국방부 민원실과 경찰서를 찾아가 소동을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