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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이 약은 '할랄' 진통제인가요?"… 명동 약국들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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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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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명동 약국에서 저녁 근무를 서고 있다. 해가 떨어져도 명동은 늦게까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대부분 찾는 것은 비슷하다. 피부에 바르는 미용 제품, 여행 시 필요한 상비약, 간혹가다 영양제 정도다. 외국어 응대 직원이 따로 있긴 하지만 중국어나 일어같이 명동을 자주 찾는 이들 정도나 해당되지, 낯선 소국에서 온 이들은 결국 스마트폰 번역기를 이용해 소통해야 한다. 약사로서도 여러모로 낯선 경험들이다.

 

며칠 전엔 중동 지역에서 왔다는 히잡을 쓴 젊은 여성이 진통제를 하나 집어들더니, 포장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영어로 물었다. "이거 할랄입니까?" 요즘은 약대도 6년제로 바뀌었다. 긴 시간 약대를 다녀 면허까지 따고 어림잡아도 수천 명에게 약을 조제해서 줬는데, 말문이 막혔다. 급한 대로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봤지만, 제조사 한국어 홈페이지에 할랄 관련 내용이 나올 리가. 늦게야 확인해 보니 질문 맥락이 있었다. 캡슐 때문이었다.

 

진통제 껍질 속의 불경함

 

학창 시절 배운 세계사 내용을 곱씹어보면, 어디선가 '세포이 항쟁'이란 표현을 본 기억이 있으리라. 19세기 인도에서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무슬림 병사들이 봉기를 일으킨 일인데, 발단은 소총 탄약의 기름이었다. 당시엔 소총에 탄약을 장전하려면 화약과 탄환을 감싼 약포를 이로 물어뜯어야 했다. 그런데 웬걸. 그 약포 표면에 바른 윤활용 기름에 돼지기름이 쓰였다는 소문이 퍼진 게 문제가 됐다. 이슬람 율법상 돼지는 불경하고 부정한 것, 즉 하람(haram)이다. 그런데 총을 쏘려면 약포를 이로 물어뜯어야 하니, 종교인으로서 도저히 용납이 어려운 일인데도 서구 문화권의 백인 장교들이 불만을 찍어누른 것이 도화선이었다.

 

중동에서 온 고객이 물어본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우리가 통상 '알약'이라고 편하게 부르긴 하지만 딱딱한 알약인 정제와 약간 말랑한 막에 싸인 알약인 연질캡슐제는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가루를 압축해서 단단하게 뭉치는 정제와 달리, 연질캡슐제는 액상의 물질을 부드러운 젤라틴 막으로 감싸 먹었을 때 상대적으로 흡수가 빠르다. 그런데 젤라틴을 만드는 원료가 나뉜다. 돼지껍질을 쓰면 '하람'이고, 소껍질을 쓰면 '할랄(halal)'이니 어떤 원료로 만든 젤라틴을 쓴 건지를 물어본 것이다. 가까스로 약 포장지 뒷면의 '전성분표'에서 젤라틴(소, 가죽)이란 부분을 찾았기에 '할랄'이란 대답은 했지만, 이게 개인의 무지로만 넘기고 갈 일일까.

 

약대에서 의약품 제조 공정이나 원료에 대해서는 빠삭하게 배웠지만, 어느 동물에서 유래한 젤라틴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할랄과 하람이 갈린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자연스레 관련 내용을 소비자에게 설명하는 법도 배우질 못했다. 캡슐 하나의 문제가 아닌 것이, 일부 정제의 코팅제, 시럽에 들어가는 안정제, 좌약의 기제에도 동물성 원료가 들어간다. 심지어는 멍든 부위에 발라 부기와 멍을 빨리 빼주는 의약품조차도 '돼지 유래 헤파린'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의약품 전반에 걸친 문제인 셈이다. 그 탓에 이미 글로벌 제약업계에서는 동물성 젤라틴을 대체하는 식물성 젤라틴(HPMC)을 이용하는 캡슐이 상용화되어 있다. 단위 비용이 젤라틴보다 다소 높지만, 종교적 제약에서 자유롭고, 심지어는 비건(채식주의자) 수요까지 흡수할 수 있어 장점이 커서 내린 결정이다. 한국은 아직 도입률이 극도로 낮으니 존재도 모르는 이가 많다.

 

K제약 수출길 열려면

 

세계 무슬림 인구는 약 20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4분의1에 해당한다. 세례는 받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활동하지 않는 '냉담자'가 있듯, 이들 모든 인구가 철저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아닐 테다. 그렇지만 글로벌 할랄 제약 시장은 리서치 기관에 따라 규모 추산이 상이하지만, 연평균 8% 이상의 성장률이 공통적으로 전망된다.

 

그 시장의 중심축이 동남아시아와 중동이다. 말레이시아는 이미 2012년에 세계 최초로 할랄 의약품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인도네시아는 2014년 할랄제품보증법을 제정한 이후 제품군별로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의약품에 대해서는 2023년 대통령령을 통해 할랄 인증 의무화 일정을 확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도 수입 제품에 대한 할랄 인증 체계를 정비하며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추세다.

 

공교롭게도 이들 지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중 동남아시아와 중동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튀르키예, 중동 관광객이 명동이나 홍대 지역에서 약국을 찾는 일은 이미 일상이다. '한류'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지리적으로도 유럽이나 북미보단 우리와 더 가까운 덕분이다.

 

이런 이들을 노리고 한국 미용시장은 할랄 화장품 인증에 조금 더 발빠르게 대응한 편이지만, 의약품 영역은 사정이 다르다. 제조사 홈페이지까지 뒤져도 찾기 어려운 할랄 인증 여부를 현장에서 어떻게 관광객에게 빠르게 확인해줄 수 있겠나.

 

물론 이를 오롯이 국내 제약산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인구 5000만명의 단일 문화권에서, 젤라틴의 동물 유래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었겠나. 국민 대다수가 같은 식문화를 공유하고, 지역별로 이질적 관습이 두드러지지도 않으니 그런 정보를 표시한다는 것 자체가 불필요했다는 점은 십분 인정한다. 그렇지만 K콘텐츠가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구성을 바꾸며, 점점 저런 질문들이 중요한 상황이 되고 있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3/0000057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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