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사릉 들꽃 채취해 장릉에 옮겨 심어
가을 사초 씨앗 받아 이듬해 한식 교차 식재키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에서도 이날 행사 소개 예정
허민 "못다한 애절한 사랑, 꽃과 함께 피어나길"
정순왕후는 단종이 유배된 뒤 폐비가 돼 동대문 밖 정업원에서 여생을 보냈고, 동망봉에 올라 남편이 있는 영월을 바라보며 그리워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릉에 '생각할 사(思)'자가 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날 사릉에서 열린 고유제는 재실 출발을 시작으로 전향축례, 취위, 사배,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사배, 망료, 예필 순으로 이어졌다.
이번 행사는 영화 흥행 이후 다시 커진 단종과 정순왕후에 대한 관심 속에서 마련됐다.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을 기리며 능을 함께 모셔 달라는 합장 청원이 잇따랐지만, 국가유산청은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완결성을 갖춰 등재돼 있는 만큼 합장은 어렵다 판단했다. 대신 사릉의 꽃을 장릉으로 옮겨 심는 상징적 방식으로 그리움을 잇기로 했다.
허 청장과 영월부군수, 종친회 관계자들이 호미를 들고 사릉에서 채취한 구절초와 쑥부쟁이, 맥문동, 벌개미취 등 800여 본의 들꽃을 정령송 주변에 심었다. 정령송은 1999년 이별의 슬픔을 위로하고 두 영혼을 만나게 할 목적으로 사릉에서 정릉으로 옮겨 심은 소나무다.
이날 심긴 식물들은 고유수종으로 대개 보랏빛 꽃이 핀다. 이에 대해 안호 궁능유적본부장 직무대리는 "정순왕후가 폐위 이후 자줏색 염색을 통해 삶을 영위하셨다"며 "양묘장에서 기르는 꽃 중 보라색을 갖고 있는 꽃들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허민 청장은 "들꽃은 모진 풍파 속에서도 꿋꿋이 이겨내는 의미가 있다"며 "폐위 이후 평민으로 돌아가서도 삶을 영위하고 살았던 정순왕후가 강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드디어 정순왕후의 사릉에 자란 꽃들을 안종대왕의 장릉 능침 앞에 심은 후 정결하게 제사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삼가 맑은 술과 여러 음식을 차려 밝게 받치오니 바라건대 흠향하소서."
축문이 불길 속에서 천천히 타오르던 오후 3시20분께, 능역을 감싸던 공기는 아침보다 한결 포근해져 있었다. 노란 개나리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현장을 지킨 관람객 50여 명도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단순한 식재 행사를 넘어, 역사 속 비극으로 남은 단종 부부의 이별을 오늘의 기억 의례로 다시 불러낸 상징적 장면이었다.
매년 7∼8월에 장릉과 사릉에서 사초(무덤의 풀) 씨앗을 확보해 양육한 뒤, 이듬해 한식(寒食)에 각 능에서 교환해 심는 행사를 매년 열 예정이다.
오는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이러한 상징적 의미를 국제사회에 소개해 조선왕릉의 역사성과 세계유산 가치를 알릴 방침이다.
허민 청장은 "오늘 오전 정순왕후 남양주 사릉에서 700리를 넘어 정순왕후가 사랑했던 보랏빛 들꽃을 가지고 단종 영월 장릉 부근에 심어주는 행사를 했다"며 "두 분이 기쁨으로 만나서 누리도록 이 행사를 준비했으니 과거 못한 애절한 사랑이 꽃과 함께 이제라도 행복하게 피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해주정씨와 전주이씨 등 능을 관리하고 제를 이어오며 국가에 기증한 종친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허 청장은 "남북 관계가 호전되면 남북이 함께 조선왕릉 42기의 완전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가유산청은 모든 왕릉을 잘 보존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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