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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관판 쪼개 팝니다”…대학로 무인 사물함, ‘신뢰’ 노린 꼼수 거래 성행

무명의 더쿠 | 04-07 | 조회 수 2137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19/0003077888?sid=103

 

'포도알 사물함' '놓고가' '연뮤덕 사물함' 등 무인 사물함 인기
짐보관 서비스 넘어 연뮤덕 물품 전달지로 자리매김
[데일리안 = 박정선 기자]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 소극장은 만성적인 공간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대형 공연장과 달리 물품 보관소가 전무하거나 협소한 탓에, 관객들은 두꺼운 외투와 가방을 안고 좁은 객석에 앉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 왔다. 혜화역 내 공공 물품 보관함 역시 늘 포화 상태다. 이 틈새를 파고든 것이 사설 무인 보관 서비스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2023년 초 등장한 ‘포도알 사물함’을 기점으로 대학로에는 ‘놓고가’ ‘혜화로465’ ‘댕로 사물함’ ‘연뮤덕 사물함’ 등 무인 물품보관소가 연달아 생겨났다.

(중략)

지하철 보관함이나 노후 건물의 코인 락커, 혹은 공연장 내 협소한 보관 시설이 전부였던 과거와 달리, 24시간 무인 운영을 기반으로 한 관객 타깃의 전문 보관 문화가 불과 몇 년 사이 대학로에 깊숙이 뿌리 내린 결과다.

대학로 사설 사물함은 연극·뮤지컬 팬(이하 연뮤덕)들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되어 있다. 24시간 운영,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간편 예약, 주요 공연장 인근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팬들 사이의 물품 전달지로 자리 잡았다.

단순 물품 보관을 넘어,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품목은 ‘재관람 도장판’(이하 재관판)이다. 재관판은 특정 공연을 여러 번 관람할 때마다 찍어주는 도장 카드로, 일정 수치를 채우면 할인권이나 미공개 굿즈, 유료 티켓 등 보상이 주어진다. 기획사들은 이 혜택의 타인 양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도장판의 남은 회차를 소액으로 ‘쪼개 파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물함은 기획사의 눈을 피하고 대면 거래의 피로도를 줄이는 최적의 ‘드롭존’ 역할을 한다. 판매자가 사물함에 물건을 넣고 비밀번호를 구매자에게 전달하면 거래가 완료되는 방식이다. 직장인 이용자 A씨는 “공연 시작 직전이나 퇴근 후 늦은 시간에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어 이용자들끼리는 일종의 약속된 매너로 통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전적으로 개인 간의 신뢰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무인 사물함은 내부 물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예약자(판매자)가 제어권을 갖는다. 이를 악용한 사기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수법은 ‘이중 판매’다. 판매자가 하나의 사물함 번호를 여러 명의 구매자에게 동시에 판매하고 입금을 받는 방식이다. 가장 먼저 도착한 구매자만이 물건을 챙길 수 있고, 뒤늦게 도착한 이들은 빈 사물함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이외에도 이미 혜택을 수령하여 폐기 대상인 재관판을 넣어두거나, 내용물 없이 종이 뭉치만 넣어 무게감을 속이는 사례도 빈번하다.

사기 피해를 본 관객 B씨는 “CCTV도 여러 대 설치되어 있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해 여러 차례 거래를 해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판매자가 보내준 사물함 번호로 문을 열었더니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며 “즉시 연락했으나 연락이 두절됐고, 사물함 업체 측에 문의해도 ‘보관함 이용 중 발생한 개인 간 거래 사고에는 책임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이런 피해가 속출함에도 불구하고 구제 수단은 마땅치 않다. 사설 사물함 업체들은 ‘공간 대여’를 목적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있어, 보관물 자체의 진위나 거래 성사 여부를 관리할 법적 의무가 없다.

수사 기관의 접근성도 떨어진다. 재관판이나 굿즈 거래는 대개 소액이다. 피해자들은 신고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피해액보다 크다고 판단해 사건을 덮는 경우가 대다수다. 익명을 요구한 C씨는 “사기꾼들은 피해자가 경찰서에 가기 번거로워한다는 점, 그리고 재관판 거래 자체가 기획사 규정 위반이라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기 꺼린다는 점을 정확히 노린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관객은 사물함 문화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팬들 스스로가 열악한 관람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공유 경제의 모델이라는 시각이다. 대학로에서 10년째 공연을 관람해 왔다는 D씨는 “사물함은 단순한 보관함이 아니라 공연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필수 인프라가 됐다”라며 “이 문화 전체가 범죄의 온상으로 매도되지 않도록, 이용자들의 주의와 함께 업체 측의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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