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 260명 설문조사
10명 중 9명 ‘주 80시간 이상’ 근무
‘근무시간 축소' 타임이팅 당연시
"일하다가 급성 마비가 와서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하지만 쉴 수 없어 곧바로 정상 출근했어요."
국내 한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회계사 A씨는 매년 봄이 두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기업들이 12월 결산 후 3월 말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1~3월은 ‘감사 시즌’이다. 회계업계 최대 성수기이자, 야근이 일상인 시기다.
격무도 문제지만, 정당한 대가를 받기 어려운 구조라고 A씨는 토로했다. 주 100시간 넘게 일하고도 평가에 불이익이 우려돼 실제 근무시간을 그대로 기재하기 어려운 탓이다. 다른 팀원이 일한 것으로 입력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응답자 92% “지난해보다 업무량 늘어”
한 대형 회계법인에서 3개월 새 30대 회계사 2명이 숨지면서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지만, 한 곳이 아닌 업계 전반의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31일 조선비즈가 전·현직 회계법인 종사자 2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효 응답자(231명)의 88.7%(205명)이 감사 시즌 평균 근무시간이 주 80시간 이상이라고 답했다.


업무량이 늘어난 배경은 여러 가지를 꼽았다. 1인당 담당하는 감사 기업 수가 불어났고, 조직 내 인력은 오히려 감소했다고 했다. 또 투입 시간 대비 보수가 적은 비(非)감사 용역이 증가하면서 업무 부담이 커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타임이팅에 일한 만큼 돈 못 받아
현장에서는 실제 근무시간보다 적게 기록하는 이른바 ‘타임이팅(Time-eating)’ 관행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회계법인에 근무하는 B씨는 “임신한 상태로 새벽까지 일했지만 회사는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임신부는 하루 8시간 이상 근무 기록을 남기지 못하도록 제한돼 있다”고 했다. 그는 “업무에 시달리는 동료들 때문에 이번 감사 시즌까지 버티고 퇴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맺은 감사 계약 범위 내에서만 근무시간을 입력하도록 압박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회계사 C씨는 “주 52시간을 넘기면 휴가 보상이 필요해지는데, 이는 상부의 성과에 부담이 된다”며 “실제 근무시간과 기록 사이에 괴리가 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무리한 ‘저가 수주’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다. 매출 확보를 위해 낮은 보수로 감사 계약을 따낸 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근로시간을 축소 기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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