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 이란이 영국을 증오하는 이유 - 영국이 이란에 한 짓을, 일본이 한국에 했다면?
5줄 요약 :
-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중 아랍 독립 약속(후세인-맥마흔), 중동 분할 밀약(사이크스-피코), 유대인 국가 지지(밸푸어)라는 상반된 삼중약속으로 중동 분쟁의 씨앗을 심었다.
-
이후 영국은 유대인 이주와 이스라엘 건국을 방치하고 UN에 떠넘기며 사실상 책임을 회피했다.
-
1953년, 영국(처칠)과 미국 CIA는 이란의 민주 총리 모사데크를 석유 이권 문제로 전복시키고 친미 팔라비 왕조를 세웠다.
-
이 쿠데타는 이란의 극심한 반서방·반미 감정을 낳았고, 결국 이란 혁명과 호메이니 집권의 단초가 되었다.
-
미국은 이후 정부 차원에서 여러 차례 사과하고 잘못을 인정했지만, 영국 정부는 여전히 공식적인 역할 인정과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
한국으로 치자면, 제국주의 일본이 (추축국이 아니라 연합국에 가담) 2차 대전 승전한 이후, 미국과 합작하여 한국의 쿠데타를 사주하고, 위성국으로 굴리던 격..
"바로 이 사태의 모든 원흉이기 때문

이스라엘의 뿌리가 되는 맥마흔, 밸푸어 선언

1차 세계대전으로 쪼달려서 급했던 영국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해버린다
1915년 후세인-맥마흔 서한: 아랍인들에게 "오스만에 맞서 반란 일으키면 독립 아랍 국가 지지해줄게"라고 약속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 프랑스랑 뒤에서 중동을 영불이 나눠먹기로 밀약
1917년 밸푸어 선언: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지지
라는 3중계약을 걸어버렸고, 1947년 유대인 이주가 진행되고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영국은 나몰라라 하고 UN에 중재를 떠넘겨버리고 튀어버린다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시키고 팔라비 왕조를 세워버린 이란 쿠데타
이 일로 인하여 이란은 개씹반서방국가로 변모하게 된다
팔라비왕조도 꽤나 부패한 왕조라 민심이 흉흉했고 결국 이란 혁명으로 호메이니가 집권하게 되는 씨앗이 된다
중동에 이스라엘을 만들어놓고 이란을 개씹반미국가로 만든 원흉..."
냉전 시절 영,미의 정보기관이 합동작전으로, 이란의 민주 정부를 석유 때문에 전복시킴. 처칠의 영국이 어떻게든 자빠뜨려야한다고 우김.
트루먼은 당시 이란 총리인 모사데크가 반공주의를 채택하고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처칠의 제안에 반대함,
후임인 아이젠하워 영국의 압박, 석유 로비의 영향으로 1953년 취임 직후 방침을 바꿔 쿠데타를 승인.
.....
이후 미국은 정부차원에서 먼저 사과함. 물론 배상 이야기는 없었지만.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 "아이젠하워 정부는 전략적 이유로 정당하다고 믿었으나, 쿠데타는 명백히 이란 정치 발전의 후퇴였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카이로 연설중) "냉전 시기에 미국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이란 정부를 전복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
2016년: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대선 경선 당시) "미국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사데크 총리를 전복시킨 것은 큰 실수였다."
영국 정부 차원에선 아직도 쌩까는중.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3/aug/15/uk-should-finally-acknowledge-role-in-1953-iran-coup-says-david-owen
"화요일, 쿠데타 70주년을 맞아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외무장관을 지낸 데이비드 오웬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1953년 미국과 공모하여 이란의 민주화 움직임을 저지한 영국의 역할을 인정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당시 잘못을 인정하고 이란의 민주화 진전을 저해했다는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현재의 개혁 가능성을 조금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왜 이란 사람들이 영국을 증오하는지, 한국 입장에서 대체 역사를 쓰자면...
"
【세계관 설정】
1945년, 일본은 추축국에 가담하지 않고, 연합국측에 줄을 섰다.
그래서 2차대전에서 승전했으나 한반도는 행정적 부담으로 '명목상 독립'을 허용한다.
그러나 경제·군사·정보는 여전히 일본이 장악한 위성국이다.
【1막: 국유화와 갈등】
1950년, 한국 총선에서 민주 국민당 압승. 새 정부는 즉시 "일본 자산 국유화 법안" 을 발의한다. . 미쓰비시 중공업, 스미토모 화학, 미쓰이 물산, 히타치 제작소, 닛산 자동차, 도시바 등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몰수하겠다는 내용. 국민적 지지 100%.
일본 정부는 격노. 육군 참모본부 정보부는 쿠데타 작전(가칭 '단풍 작전')을 수립하고, 주한 미군 및 CIA에 협조를 요청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반대한다: "쿠데타는 공산당만 키울 것이다. 식민지 유산 청산은 한국인의 정당한 권리다."
일본 지도부(처칠 역할)는 끊임없이 압박한다: "지금 제거하지 않으면 아시아 전체가 반일·반미로 돌아섭니다."
【2막: 쿠데타】
1953년 1월, 아이젠하워 취임. 냉전적 사고의 새 행정부는 판단을 바꾼다.
여기에 일본의 끊임없는 간청과, 한국 내 일본 자산을 지키려는 미쓰비시·스미토모·미쓰이 등 일본 재벌들의 막강한 로비, 그리고 미국 석유 메이저들의 '이란 선례'에 대한 우려가 더해진다. 일본은 "한국만 지키면 아시아 전체의 반공 진영이 안정된다"고 설득했고, 일본 재계는 워싱턴의 로비스트와 의원들에게 거액을 풀었다.
아이젠하워의 판단: "한국의 민주 정부는 점점 급진화되고, 친일파 관료들은 숙청당하고 있다. 이대로면 한국은 중립화되어 공산권으로 기울 수 있다. 일본의 경제 이익을 지키는 것이 곧 자유 진영의 안보를 지키는 길이다."
결정: 아이젠하워는 CIA에 일본 정보부와의 합동 쿠데타를 승인한다.
1953년 8월, 작전 실행
-
계획: 일본 육군 참모본부 정보부 (나카노 학교 출신 포함)
-
실행: CIA + 나카노 학교 요원들 + 친일파 군부 세력
-
방법: 거리 폭동 선동 → 군부가 서울 장악 → 민주당 주요 인사 납치·암살 → 미국 항공모함 한반도 인근 배치
【3막: 독재와 그 후】
결과:
-
민주 정부 총리 → 체포, 3년형, 가택 연금
-
일본 육사 출신 친일파 장군이 26년간 독재 통치
-
비밀경찰(일본 헌병통치 모델)로 탄압
-
경제는 日·美 합작 기업이 장악, 한국은 조립 공장으로 전락
-
일본 자산 국유화 법안은 즉각 폐기
1979년, 한국 혁명. 독재자 망명.
혁명 후 정권: 극단적 반일·반미 민족주의 정권 수립
-
美 대사관 점거, 인질 사태
-
서방과 단절, 핵무기 개발
-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가장 위협적인 적국으로 변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