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술 유출에 골머리를 앓는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이 사설탐정 사무소를 찾고 있다. 기술 유출이 의심될 때 퇴사자를 추적해 관련 증거를 모으기 위해서다. 잇단 기술 유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반도체 장비를 제조하는 중견기업 A사 대표는 2024년 8월 조립 공정 분야의 9년 차 실무자가 돌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탐정 사무소를 찾았다. “인력 용역회사로 이직할 계획”이란 퇴사자의 말을 듣자 동종 업계 다른 기업으로 재취업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A사 대표는 “기술이 생명인 회사다 보니 숙련된 기술자들이 퇴사할 때마다 항상 신경이 쓰였다”며 “근로계약서에 퇴사 후 2년간 동종 업계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지만, ‘고향 가서 농사짓겠다’ 등의 이유를 대며 퇴사하는 직원들을 일일이 쫓아다닐 수도 없어서 탐정 사무소에 사건을 의뢰했다”고 했다.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을 받는 삼성전자 전 수석연구원 A씨가 2024년 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떠나는 모습. 연합뉴스
사건을 의뢰받은 탐정 업체는 2주 동안 퇴사자를 추적한 끝에 그가 아침마다 특정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을 포착했다. 조사 결과 그곳은 당초 인력 용역업체의 사무실이었지만, 중국 반도체 장비 기업이 해당 업체를 통째로 인수한 뒤 기술 연구·개발(R&D)을 진행해온 시설인 것으로 나타났다. 퇴사자가 근무하는 4층 사무실 안팎에서 A사의 반도체 장비 도면과 관련 부품도 발견했다고 한다.
장재웅 웅장컨설팅(웅탐정) 대표는 “해당 퇴사자는 A사에서 7500만원의 연봉을 받았는데, 중국 업체가 종전 연봉의 4배인 3억원을 제시하면서 인력 빼낸 사건”이라며 “퇴사자가 A사 재직 당시 사용하던 업무 PC 등에서 다수의 도면 파일을 다운로드 받고 출력한 기록까지 발견돼 회사에서 그를 영업비밀 침해와 배임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최근 이런 기술 유출 관련 사건 의뢰가 많이 늘고 있다. 반도체 기업만 해도 2차, 3차 하청 업체까지 포함한다면 이런 식으로 중국계 기업으로 유출되는 기술 인력이 1년에 1000명도 넘을 것”이라고 했다.
디자인도 기술 유출이 빈번한 분야다. 국내 가구업체 B사에서 디자인 총괄 이사로 일하던 김모씨는 2019년 퇴사 후 동종 업계에서 회사를 차리고 법인 대표에 올랐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중국 가구회사가 출자한 홍콩 투자회사가 지분 10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B사 재직 당시 1억원의 연봉을 받았는데, 사설탐정 업체 조사 결과 중국 경쟁사에서 3억~4억원의 연봉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B사의 공장이 있는 중국에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현지 가구 업체 관계자들과 안면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B사는 탐정 업체를 통해 수집한 증거를 바탕으로 김씨를 영업비밀 침해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들 기업이 경찰서가 아니라 탐정 사무소를 먼저 찾는 건 관련 증거를 확보해야 이후 수사 등 형사 절차 진행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황인창 국가공인탐정협회 수석부회장은 “중소·중견 기업은 사업의 핵심이 되는 주요 기술이 유출되면 그대로 망할 수밖에 없다”며 “사전에 이뤄지는 퇴사자 관리부터 이미 기술 유출 정황이 나타났을 때 대응까지 중소기업이 스스로 해내긴 쉽지 않다. 이런 컨설팅 등을 받기 위해 탐정 업체를 찾는 기업이 최근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유출 범죄가 연일 잇따르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단 지적도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기술 유출 범죄는 179건으로 전년(123건) 대비 45.5% 늘어난 역대 최대치였다. 이 중 해외 유출 범죄는 33건이었는데, 중국이 18건(54.5%)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내부 통제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기술 유출 범죄 등에 특히 취약하다”며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부당 이득액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징벌적 배상 책임을 물려서 기술 유출 범죄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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