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소비자보호의 민낯]
< 상 > 비대칭 규제의 역설
지점서 상품 가입하면 설명 지옥
비대면은 확인절차 제대로 안돼
창구 이용 고령층은 불편함 커져
상품 설명 명확히하되 간소화를
“설명을 다 드리면 40분 이상 걸리는데 괜찮으실까요?”
31일 오전 서울의 A은행 영업점.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 신탁 상품 가입을 요청하자 창구 직원은 가입 절차가 길다는 점을 짚으며 소요 시간부터 안내했다.
4대 은행의 ETF 판매액은 지난해 11월 3조 5299억 원에서 이달에는 30일 기준 6조 6871억 원까지 증가하며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인기 몰이 중인 ETF 가입 과정은 예상보다 더 길고 복잡했다.
투자자 성향 분석을 시작으로 상품 구조 설명, 위험 고지, 녹취, 자필 서명과 확인 절차가 이어졌고 중간중간 비슷한 취지의 질문이 반복됐다. 가입 절차가 시작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상품설명서에 나온 내용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창구 직원 역시 고객의 불편함을 덜어주려는 듯 빠른 속도로 설명을 이어갔다.

특히 ETF와 같은 고난도 상품 및 적정성 원칙 대상 상품의 경우 나이와 무관하게 투자자 성향 분석 결과 안내에 대한 녹취까지 의무적으로 진행해야 해 시간이 더 늘어났다. 상품 가입이 완료된 후 시계를 확인했을 때는 당초 안내받은 시간을 훌쩍 넘긴 1시간 10분이 지나 있었다.
B은행 영업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 주식 ETF 상품에 가입한 후 분산투자 차원에서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는 직원 추천에 따라 가입을 진행한 결과 각각 30분씩 총 1시간가량이 소요됐다. ETF에 가입하면서 이미 투자 성향 분석을 했지만 IRP 가입 시 이를 반복해야 하는 점이 번거로웠다. 문항과 선택지가 같지만 가입하는 상품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추가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영업점 직원의 설명이었다.
반면 비대면 가입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직원의 구두 안내가 없으니 투자 성향 분석 단계부터 1분 안에 끝났다. 상품 설명의 경우 의무적으로 영상통화를 진행해야 하는데 이를 포함하더라도 전체 가입 과정이 10분 안에 마무리됐다. 퇴직연금을 통한 ETF 가입은 모바일의 경우 4분이면 가능했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스크롤만 넘기면 되는 식이다.
금융 소비자보호가 비대칭적으로 이뤄지면서 창구 가입은 지나치게 어렵고 모바일은 충분한 확인도 없이 가입이 가능해 제대로 된 고객 보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보이스피싱 예방도 좋지만 지점에서의 고난도 투자 상품과 보험 가입, 고액 송금은 과도하게 소비자보호가 이뤄지고 있어 손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ETF 대면 가입 과정을 직접 체험한 결과 대부분 1시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 창구 방문 시 직원이 고객의 스마트폰을 건네받아 대신 가입해주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통계청장을 지낸 이인실 전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소비자보호 규제가 너무 비대칭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소비자보호가 지나치다 보니 과도한 제도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하면 고령층과 취약 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낮아지고 자산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특히 정치권과 당국의 의도와 달리 은행들이 고객들에게 디지털 수단을 통한 가입을 유도하게 해 실질적인 소비자보호와 피해 보상이 안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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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605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