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기로 의원을 찾은 직장인 김모씨는 소염진통제 등과 위점막보호제를 같이 처방받았다. 사진 독자
지난 14일 감기 증상으로 서울의 한 가정의학과 의원을 찾은 직장인 김모(34)씨는 약국에서 처방약 봉투를 받고 의아함을 느꼈다. 요청하지 않은 위점막보호제가 기침약·소염진통제와 함께 처방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감기약을 처방받을 때마다 별다른 설명 없이 위장약이 함께 나오는데, 꼭 필요한 약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위장약은 위장 질환이 없는 환자에게도 '1+1'처럼 세트로 처방되는 경우가 흔하다. 온라인에서 "디스크 치료 중인데 왜 위산억제제가 같이 처방되느냐"와 같은 물음이 이어지고 있다.
25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위장약의 '세트 처방' 관행을 의료계 자율 규제를 통해 개선하기로 했다. 의료계는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과 의료인 모두 인식 개선이 필요한 문제"라며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의료계가 진료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필요한 환자 중심으로 처방하는 자율 규제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의협) 대변인도 "약물 복용 기간이 짧다면 위장약을 처방하지 않는 등의 한국형 가이드라인을 유관 학회에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위장약의 세트 처방은 의료계의 오랜 관행이다. 소염진통제나 항생제 복용 시 속쓰림과 같은 위장 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처방돼 왔다. 김 대변인은 "위장약 사용을 권고하는 의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위출혈 등 부작용 우려와 환자별 증상 차이로 예방적인 처방이 이뤄져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방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처방 규모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4년 '위장약'으로 분류되는 위산억제제·점막보호제·위장운동제 등 소화기관용 의약품의 처방 실인원은 약 43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84%에 달했다. 또한 약물 처방 환자 10명 중 9명(91%)은 위장약을 함께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처방은 감기 등 흔한 호흡기 질환이나 일반적인 통증 치료 과정에서 두드러졌다. 또한 상급종합병원(31%)보다 의원급(55.6%)과 병원(58%)에서 위장약의 처방 비율이 더 높았다. 전체 처방 중 위장 질환(소화계통) 치료는 9.2%에 그쳤고, 호흡계통 질환(32.7%)과 근골격계통 질환(18.4%) 등 다른 질환 치료 과정에서 2~3배가량 높은 비율로 처방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감기 등 호흡기 환자 3329만 명 가운데 82.5%(2746만 명)가 위장약을 함께 처방받았다. 이에 대해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65세 이상 고령자나 항응고제 복용자, 위출혈 고위험군 등을 제외하면 건강한 성인에게 위장약 병용 처방은 불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위장약 과다 처방으로 인한 국민 안전 문제와 건보 재정 부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위장약의 국민 1인당 연평균 처방량은 165정으로, 이는 하루 3회 복용 기준 약 두 달 치에 해당한다. 이에 따른 약품비로 2조159억원이 지출됐다.
전문가들은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있는 만큼 환자들도 신중히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위산억제제와 항생제를 함께 쓰면 다제내성균(수퍼박테리아) 감염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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