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연일 다주택자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다주택자를 주택 시장을 왜곡시키는 원흉으로 여기고 이들이 줄어들면 주택 시장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모든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고 모든 무주택자들이 집을 사면 모두가 1가구 1주택자가 될 터이니 그때부터는 주택 문제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주택 시장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 중에서 이런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자가 보유율, 다시 말해 자기 집을 소유하는 유주택자의 비율은 70%를 넘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2025년 기준으로 65.3%이다. 미국민의 34.7%가 무주택자인 것이다. 복지 수준이 높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도 이 수준으로 보면 된다.
그러면 주택보급률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이들 선진국에서도 자가 보유율이 70%를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경제하에서는 소득이나 이로 인한 자산 수준에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무주택자 중에는 소득이 낮지는 않지만 본인의 사정상 집을 소유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직업 군인과 같이 순환 배치가 잦은 직장에 근무하는 경우 특정 지역에 집을 사서 거주한다는 것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선진국 정부, 30% 무주택자 보호에 초점
이런 이유로 선진국 정부들은 이들 30% 정도의 무주택자를 보호하는 것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고 나머지 70%에 대해서는 완벽히 시장경제에 내맡기고 있다. 선진국들이 시장경제 원리를 존중하는 이유는 기득권층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잡한 현대 사회 시스템에서 정부가 잘못 개입하다가는 부작용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마을에 1돌이, 2돌이, 3돌이, 4돌이, 5돌이, 6돌이, 7돌이, 8돌이, 9돌이, 10돌이 이렇게 열 명이 모여 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1돌이는 집이 다섯 채나 있는 다주택자이고 7돌이, 8돌이, 9돌이, 10돌이는 무주택자이다. 나머지 2돌이부터 6돌이까지는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1가구 1주택자들이다. 이 마을의 주택보급률은 100%이고 자가보유율은 60%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마을에 신관 사또가 부임해 오자 집이 없는 7돌이가 사또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에는 집이 모자라지 않는데 욕심쟁이 1돌이 때문에 집이 없는 사람이 네 명이나 된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신임 사또는 1돌이를 불러다 점잖게 말했다. 말미를 줄 때 집을 처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사또로 있는 한 모든 사람이 자기 집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온 마을에 공표를 했다.
이후로 1돌이는 급하게 집을 내놓았고 7돌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집 마련에 성공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집을 살 경제적 여유가 있는 7돌이와 달리 나머지 8돌이, 9돌이, 10돌이는 집을 살 여력이 없거나 살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8돌이와 9돌이는 집을 살 돈조차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에 사또의 조치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나마 집을 살 여력이 있는 10돌이의 경우는 집을 사게 되면 주식 투자할 돈이 묶이기 때문에 집을 살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집을 팔 수 없었던 1돌이가 사또를 찾아가서 사정을 호소해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호통과 함께 5월 9일까지 (본인이 거주하지 않는) 나머지 세 채를 팔지 않으면 곤장 세례를 받을 것이라는 엄포뿐이었다.
곤장이 무서웠던 1돌이는 옆 마을에 살고 있던 후배에게 한 채를 팔고 나머지 두 채도 다른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팔기로 했다. 그래서 이 마을은 다주택자가 없는 동네가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마을에서 예전부터 세입자로 살아온 8돌이, 9돌이, 10돌이이다. 그들은 집을 살 여력이 없거나 살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몇 년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던 집에서 계약 만기 때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집이 열 채밖에 되지 않는 마을에서조차도 사람들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다주택자 1돌이를 다그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각자의 사정이 모두 다른 현대 사회에서 수천만 명의 국민의 삶을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를 알 수 있다.
‘욕심 많은’ 다주택자 vs ‘불쌍한’ 무주택자 프레임이 문제
또 다른 마을의 이야기이다. 이 마을은 한양에 가까워서 언제나 주택 수가 수요에 비해 부족한 마을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마을에 총 5채의 주택이 있고 3채에는 1주택자 3명이 각각 거주하고 있고 (그 마을에 살고 있지 않는) 다주택자가 임대주택 2채를 시장에 내놓았다. 이때 이 마을에서 집을 구하는 임차인이 3명이라면 임대주택 2채를 놓고 3명이 경쟁하는 구도로 경쟁률이 1.5대 1이다. 이런 이유로 이 마을의 전세가는 다른 마을에 비해 언제나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런데 만약 이 다주택자가 임대주택 1채를 무주택자에게 팔았다면 어찌 될까? 임대 물건이 한 채 없어졌지만 임대 수요도 한 가구가 없어졌으므로 같은 결과가 될까? 아니다.
임대주택이 2채에서 1채로 줄고 집을 구하는 임차인이 3명에서 2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면 임차인 2명이 임대주택 1채를 놓고 경쟁하는 구도로 경쟁률이 2.0대 1이다.
임대 매물도 많았던 예전에는 경쟁률이 1.5대 1에 불과했지만 임대 매물도 줄고 임대 수요도 줄어든 후에는 경쟁률이 2.0대 1로 치솟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임대 매물이 임대 수요보다 적은 지역에서 전월세가 더욱 상승하는 이유다.
주택보급률이 93.9%밖에 되지 않는 서울에서 전세가 상승률이 높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KB국민은행에서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지난 40년 동안 서울의 전세가 상승률은 1138%로 주택보급률이 높은 대구(430%), 광주(447%), 울산(527%) 보다 두 배 이상 된다. 이를 두고 서울에 있는 임대인들이 다른 지역의 임대인보다 욕심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비유로 엮은 두 개의 이야기는 상상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올해 이사철부터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미래를 풍자한 것이다.
다주택자의 매물이 사라지면 임대 매물이 사라지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임대 수요도 사라지기 때문에 전세난은 없을 것이라고 일부 학자가 주장한다. 과연 이들의 말이 맞을지는 몇 달 후면 알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1주택자가 되어 자기 집에 사는 세상은 절대 오지 않는다. 집을 살 수 있는 능력을 떠나 자발적으로 세입자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방에 집이 있는 사람이 자녀 교육 때문에 강남 대치동에서 전세로 사는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부산에서 살든 강남 대치동에서 살든 본인의 선택이다. 부산에서 자가로 살던 사람이라도 대치동에서 집을 사기 어려우면 임대로 사는 것이 정상이다. 전세로 사는 것이 죄가 아니듯이 전세로 임대를 주는 것 또한 죄가 아니다.
그런데 대치동 다주택자들이 집을 모두 무주택자들에게 팔아서 대치동에는 1가구 1주택자만 있다고 가정하면 전세난이 벌어지지 않을까? 아니다. 앞에서 예로 든 것과 같이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대치동에서 전세로 살고자 하면 바로 전세난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세 매물은 사라져버렸지만 수요는 일정하게 늘기 때문이다.
지방에 집이 있지만 자녀 교육 때문에 대치동에서 거주하려는 A 씨는 실수요자이다. 직장 문제로 수도권에 거주해야 하는 B 씨도 실수요자이다. 이처럼 주택 소유 유무와 상관없이 전셋집을 찾는 임차인은 실수요자라고 할 수 있다.
욕심 많은 다주택자와 불쌍한 무주택자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서만 세상을 보면 주택 시장의 문제, 특히 앞으로 닥쳐올 전세난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다음 칼럼에서는 앞으로 몇 달간 다가올 이사철에 전세난이 심화될 지역이 어디이고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602254723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