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결혼식 축의금 13,000원 낸 친구
5,569 31
2026.03.25 12:03
5,569 31

[ 축의금 만삼천원 ]

10년 전, 나의 결혼식 날이었다.
결혼식이 다 끝나도록 친구 형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정말 이럴 리가 없는데......
예식장 로비에 서서 형주를 찾았지만
끝끝내 형주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형주 아내가 토막 숨을 몰아쉬며
예식장 계단을 급히 올라왔다.
"고속도로가 너무 막혀서 여덟 시간이 넘게 걸렸어요.
어쩌나, 예식이 다 끝나 버렸네..."
숨을 몰아쉬는 친구 아내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민이 아빠는 오늘 못 왔어요. 죄송해요...
석민이 아빠가 이 편지 전해 드리라고 했어요."
친구 아내는 말도 맺기 전에 눈물부터 글썽였다.
엄마의 낡은 외투를 덮고 등 뒤의 아가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철환아, 형주다. 나 대신 아내가 간다.
가난한 아내의 눈동자에 내 모습도 담아 보낸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리어카 사과 장수이기에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사과를 팔지 않으면 석민이가 오늘 밤 굶어야 한다.
어제는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사과를 팔았다.
온종일 추위와 싸운 돈이 만 삼천 원이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지랑이 몽기몽기 피어오르던 날,
흙 속을 뚫고 나오는 푸른 새싹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 희망을 노래했던 시절이 내겐 있었으니까.
나 지금, 눈물을 글썽이며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마음만은 기쁘다.

 

 

 

'철환이 장가간다...
철환이 장가간다...
너무 기쁘다.'
아내 손에 사과 한 봉지 들려 보낸다.
지난 밤 노란 백열등 아래서 제일로 예쁜 놈들만 골라냈다.
신혼여행 가서 먹어라.

친구여, 오늘은 너의 날이다.
이 좋은 날 너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마음 아파해다오.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다.

해남에서 형주가..

 

 


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세 장....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형주가
거리에 서서 한겨울 추위와 바꾼 돈이다.
나는 웃으며 사과 한 개를 꺼냈다.

 

 

 

"형주 이놈, 왜 사과를 보냈대요. 장사는 뭐로 하려고..."
씻지도 않은 사과를 나는 우적우적 씹어댔다.
왜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새 신랑이 눈물 흘리면 안 되는데..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는 친구 아내가 마음 아파할 텐데...
멀리서도 나를 보고 있을 친구 형주가 마음 아파할까봐
엄마 등 뒤에서 잠든 아가가 마음 아파할까봐

나는 이를 사려 물었다.

하지만 참아도, 참아도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참으면 참을수록 더 큰 소리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사람들 오가는 예식장 로비 한가운데 서서..

 

 

 

 

형주는 지금 조그만 지방 읍내에서 서점을 하고 있다.
'들꽃서점.'
열 평도 안 되는 조그만 서점이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의자가 여덟 개다.
그 조그만 서점에서
내 책 '행복한 고물상' 저자 사인회를 하잖다.
버스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여덟 시간을 달렸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와는 다른 행복이었다.
정오부터 밤 9시까지 사인회는 아홉 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인을 받은 사람은 일곱 명이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친구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으로만 이야기했다.

"형주야, 나도 너처럼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살며시 웃으며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사랑 많은 감나무가 되고 싶었어...."

 

 

= 이철환 『곰보빵』중에서 




고전글인데 읽을때마다 🥹

목록 스크랩 (1)
댓글 3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매일두유X더쿠] 에드워드 리 셰프가 선택한 ‘매일두유 99.9 플레인’ 체험단 모집💚 514 00:05 8,638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998,265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2,027,98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989,96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5,343,994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76,496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3 21.08.23 8,530,036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42,632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604 20.05.17 8,650,888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8 20.04.30 8,531,25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433,155
모든 공지 확인하기()
3032679 기사/뉴스 트럼프·시진핑 모두 노리는 북극 항로…한국도 경쟁 가세 16:50 0
3032678 이슈 일부 공개된 LG 트윈스 X 먼작귀 (치이카와) 콜라보 상품.jpg 2 16:50 80
3032677 유머 소쿠리에 다 다려지는 아기판다 푸바오 ㅠㅠㅠ 16:49 122
3032676 이슈 주둥이가 짧아서 속상한 토끼 1 16:49 71
3032675 기사/뉴스 "증거있어?" 비웃던 박왕열, 한국땅 밟자 "남자도 아냐" 폭발 2 16:49 204
3032674 이슈 몬스타엑스 셔누 기현 대추노노 16:49 65
3032673 이슈 한국은 큰 천혜자원이 있다 바로 물이다 14 16:46 1,126
3032672 이슈 유튜브 조회수 200만회 넘은 포레스텔라 불후의명곡 무대 16:46 96
3032671 이슈 신인 남돌이 “아이돌”로 거듭나기 위해 넘어야 할 의외의 첫 번째 벽 16:45 477
3032670 이슈 올해 15살 되었다는 배우 박환희 아들.jpg 7 16:44 1,780
3032669 이슈 여자라면 무 조 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화..........jpg 3 16:44 830
3032668 이슈 올해는 25년만에 김대중 대통령의 꿈이 이루어지는 해다 (KF-21) 6 16:44 419
3032667 이슈 복이(동안, 8세)와의 진지한 인터뷰 6 16:43 678
3032666 이슈 이유는 모르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하고 있는 행동들 5 16:41 1,462
3032665 이슈 바깥 구경중인 엄마여우와 아기여우 8 16:40 839
3032664 이슈 진지하게 자기 최애곡 부르는 유재석 5 16:40 521
3032663 유머 샴푸할때 머리를 어떻게 해야하나요? 1 16:40 472
3032662 이슈 왕사남 인기 실감나는 각본집 판매 상태 17 16:38 1,912
3032661 이슈 있지(ITZY) "THAT'S A NO NO" 멜론 일간 추이 9 16:37 519
3032660 정치 김상욱 "거리 유세차도 대규모 조직도 없는 울산시장 선거하겠다" 22 16:37 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