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하이브 주가가 29만4,500원까지 떨어졌다. 전 거래일(34만4,000원) 대비 14.39% 급락이다. 사흘 전만 해도 36만7,500원으로 52주 고점을 찍었던 주가다.
지난 20일, BTS 정규 5집 '아리랑'이 발매됐다. 첫날 398만 장. 스포티파이 글로벌 차트 전곡 석권. 다음 날 광화문 광장 컴백 공연에는 경찰·서울시가 최대 26만 명 운집을 예측했지만, 서울시 실시간 도시데이터 기준 실제 관객은 약 4만 명 수준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이브 측은 10만4,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컴백 효과를 미리 반영했던 주가는 공연이 끝나자 차익 실현 매물에 무너졌다.
같은 날 금융감독원에 337쪽짜리 문서가 올라왔다. 하이브 제21기 사업보고서다. 역대급 컴백의 관심에 파묻히기에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 문서에는 무대 위와 정반대되는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역대 최고 매출, 역대 최대 손실
먼저 실적부터 보자. 매출은 2조6,499억원으로 역대 최고다. 전년보다 17.5% 늘었다. 여기까지는 언론이 다 보도했다. 문제는 그 아래다. 영업이익은 493억원으로 73.2% 쪼그라들었다. 연결 당기순손실은 2,544억원. 전기(34억원 손실)에서 적자 폭이 75배로 커졌다. 매출 역대 최고인데, 순손실도 역대 최대다.
하이브는 이 실적 악화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신규 아티스트 데뷔 투자, 북미 사업 재편, 그리고 "4분기에 약 2,000억원 규모 손상차손을 인식했지만 실제 현금 유출은 없는 회계상 손실"이라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 설명을 그대로 전했다. "현금 유출 없는 회계상 손실"이라는 말에 안심하고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그 손상차손의 안을 열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싸게 산 값" 1조원, 4년째 장부에 남아 있다
'손상차손'을 이해하려면 '영업권'부터 알아야 한다. 영업권은 쉽게 말해 "비싸게 산 값"이다. 100억원짜리 회사를 500억원에 샀다면, 차액 400억원이 영업권이다. "이 회사가 앞으로 돈을 잘 벌 테니 비싸게 사도 괜찮다"는 기대가 담긴 금액이다.
기대대로 돈을 잘 벌면 문제없다. 기대가 빗나가면 그 금액을 깎아내야 한다. 이걸 '손상차손'이라고 부른다. 하이브가 4분기에 인식한 약 2,000억원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영업권 손상차손이다.
그런데 사업보고서를 뜯어보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깎인 곳과 깎이지 않은 곳의 차이가 너무 크다.
이타카, 3,231억 적자인데 211억만 깎았다
2021년 하이브는 미국 회사 이타카 홀딩스를 약 1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뉴탐사가 앞서 보도한 바와 같이, 실질 순자산 728억원짜리 회사에 1조원 넘는 프리미엄을 얹어준 인수였다.
이타카가 속한 미국 법인 HYBE America는 2025년 한 해 3,231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전년(1,400억원 손실)보다 적자가 2.3배로 불었다. 이 정도 적자라면 영업권을 대폭 깎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타카의 영업권은 8,653억원에서 8,234억원으로, 211억원밖에 줄지 않았다. 비율로 따지면 2.4%만 깎은 것이다.
왜 이렇게 적게 깎을 수 있었을까.
한국은 1%, 이타카는 2.5%
답은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무형자산에 있다.
기업은 "이 영업권을 깎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려면 근거를 대야 한다. 하이브는 매년 '손상평가'를 한다. 핵심은 "이 회사가 앞으로 얼마를 벌어들일 것인가"를 추정하는 것이다. 먼저 5년치 예산을 짠다. 문제는 5년 이후다. 5년 뒤부터는 매년 일정한 비율로 성장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 비율을 '영구성장률'이라고 부른다. 뜻은 간단하다. "이 회사가 영원히 매년 몇 퍼센트씩 자랄 것"이라고 보는 숫자다.
이 숫자가 높을수록 미래에 벌어들일 돈이 커진다. 미래 수익이 커지면 지금 장부의 영업권을 깎지 않아도 된다.
사업보고서에 적힌 이타카의 영구성장률은 2.5%다.
는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나는 매출 2조6,499억원이라는 숫자. BTS 컴백과 함께 언론이 집중 보도한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이타카 영업권 8,234억원을 영구성장률 2.5%라는 가정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 민희진 소송에서 1심 패소해 293억원의 공탁금을 쌓아두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방시혁 의장이 급여 0원에 배당 66억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업보고서는 공시됐다. BTS의 광화문은 화려했다. 그러나 337쪽의 숫자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무대 위와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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