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정비 인경왕후 훙서 뒤에
삼년상도 끝나기 전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를 위시한 서인당과
송시열의 합작아래 인현왕후 민씨를 계비로 간택.
숙종의 자존심과 법도를 모두 밟아가며 강행 되었기에
왕 입장에서는 곱게 보였을리 만무
거기다 이 시점의 숙종 정치성향은 남인과 맞았기에
인현왕후가 원자를 낳는다면 큰 위협이었음
거기에 명성왕후 김씨는 홍수의변을 일으켜
삼복(인조의 손자 셋)을 제거해놓고
조정에서 남인들의 역공을 받자 앙심을 품음
계속해서 본인이 왕실 최고 어른인양 정사에 개입
보다못한 진짜 왕실 최고어른 장렬왕후 조씨는
손주며느리 명성왕후 김씨의 월권에 대응하여
숙종의 거처를 특정 시기마다 별당으로 지정 하였음
(대왕대비 고유 권한으로, 그 누구도 출입 불가)
즉, 인현왕후가 온전히 숙종과 합궁할 수 없게 되었음
그 후에 명성왕후 김씨는 무속행위를 하다가
폐렴에 걸렸고 결국 승하하게 됨
비슷한 시기에 조정에 있던 서인 세력이
대거 실각하면서 인현왕후는 왕실에
고립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음..
그러나 대왕대비 장렬왕후가 살아 있었기에 숙종은
선뜻 내명부에 개입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일을 치르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