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 사람만 모여도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 영화 봤어? 왕사남?’
넷플릭스 시대에 한 편의 영화가 다시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장항준 감독의 알고 보는 비극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3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
역대 국내 개봉 영화 가운데 34번째, 한국 영화로는 25번째 기록이며 코로나 19 이후 여섯 번째 ‘천만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조선의 비극적 군주 단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중략)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흥행 방식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개봉 첫 주말 관객 수가 가장 많고 이후 점차 감소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관객이 늘었기 때문.
첫 주말 76만 명에서 시작해 2주 차 95만 명, 3주 차 141만 명, 4주 차에는 175만 명으로 상승했다.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천천히 스며들며 입소문이 관객을 극장으로 다시 불러내는 흐름이다.
바로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과 마주한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일상이 된 시대에, 사람들은 왜 여전히 영화관으로 향하는가?
오늘날은 거의 모든 콘텐츠를 집에서 소비할 수 있다.
넷플릭스나 기타 다양한 여러 플랫폼을 켜면 수천 편의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편안한 소파, 자유로운 일시 정지 버튼, 원하는 시간에 시작할 수 있는 편리함까지. 논리적으로만 보면 영화관은 이미 불리한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때때로 이런 ‘천만 영화’가 나타나며 그 존재 이유를 다시 증명한다.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아닌 감정을 공유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상영관에서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나란히 앉는다.
서로 이름도 모르고, 다시 만날 일도 없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같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누군가가 웃으면 따라서 웃음이 번지고, 긴장된 장면에선 숨소리마저 함께 낮아진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들은 극장을 일컬어 ‘공동의 꿈을 꾸는 공간’이라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의 우린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스크린이 켜지는 두 시간 동안은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스크린 속에서 단종의 고독한 운명이 펼쳐질 때 그 감정을 함께 느낀다.
때문에 어린 왕의 비극은 개인의 역사에서 공동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집에서 혼자 보는 영화가 개인의 경험이라면,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작은 공동체의 경험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크린을 통해 한 장면이 펼쳐지고 수백 명이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영화는 단순한 영상이 아닌 하나의 사건이 된다.
넷플릭스 시대에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혼자 보는 이야기보다, 함께 보는 이야기가 더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오늘도 극장에 간다.
/방송작가 홍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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