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상황 속에서 거둔 외교적 실적이지만, 역설적으로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쟁이 금방 끝날 거란 기대는 이미 물 건너갔다. 긴 싸움을 각오한 이란은 초크포인트(Choke points,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등 해상 운송 요충지) 중 하나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본격화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는 경고는 과장이 아니다. 낚싯배로 위장한 드론 보트의 자살 공격이 시작됐고, 기뢰와 미사일 투입도 예고됐다.
지난해 하루 평균 1570만 배럴의 석유가 이 길을 지났다. 전 세계 해상 석유 물동량의 3분의 1이 넘는다. 수십 년간 이란은 외부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이 길을 인질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 걸프전(1990~1991년) 등 수없는 포화 속에도 해협은 완전히 봉쇄되지 않았다. 이번엔 진짜 막아섰다. 약 6500㎞ 떨어진 한국도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는 중동에서 오고, 그중 90%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친다.
지난 3주가 치솟은 유가와의 싸움이었다면 이젠 수급과의 전쟁이다. 비싼 건 불안의 영역이지만 없어지는 건 실존적 공포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현실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비축유 방출을 검토하고, 차량 5부제 같은 수요 억제책도 언급된다. 현장에선 4~5월 위기설이 돈다. 원유가 제때 들어오지 못하니 모아둔 걸로 버텨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실제로 정유사가 비축한 물량은 이르면 4월부터 소진된다. 중동 외 물량, 외교력을 동원해 확보한 추가 물량만으로는 어차피 기존 물량을 채울 수 없다. 현재 석유 비축 물량은 약 1억9000만 배럴. 정부는 비축유로 208일을 버틸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수출을 뺀 계산이다. 지난해 국내 정유사의 수출 물량은 4억8535만 배럴로 전체 원유 도입량(9억3506만 배럴)의 51.9%다. 수출을 포함한 하루 석유 소비량은 280만 배럴. 1억9000만 배럴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약 68일이다.
정부는 위기가 고조되면 수출을 통제하고, 수요를 억제하며 장기전에 돌입할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한 정유 업계 전문가는 “실제 비축유 방출을 시작했는데 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으면 매일 시장은 패닉에 빠질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4월이든 5월이든 위기설은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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