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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을 촌캉스·카페·체험 공간으로… 흉물서 ‘자원’ 재탄생 [심층기획-2026 빈집 리포트]

무명의 더쿠 | 13:19 | 조회 수 900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4113658?sid=102

 

17일 경남 거제시 장승포항의 한 도로. 지나다 마주하는 청록 벽돌집 유리문에 적힌 ‘밗’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와 강, 산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빈집으로 방치돼 있던 이곳에 바(BAR)가 들어선 것은 2021년. ‘빈집이 자원’이라는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된 도전이다. ‘밗’을 운영하는 회사명도 ‘공유를 위한 창조’로 다음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열린 이름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방문객은 “이곳이 빈집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먹거리와 나름의 특색을 살린 상가들이 있고 장승포항을 거닐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경기 고양시 한 전원주택을 7년째 빈집관리사가 관리하고 있다. 한국빈집관리협회 제공

빈집이 커뮤니티 공간과 게스트하우스로 변하면서 마을 분위기도 탈바꿈했다. 일본 청년이 운영하는 맛집까지 합류하면서 장승포는 청년 창업과 도시재생의 거점으로 변모했다. 얼마 전까지 위스키 등을 팔았던 바는 지금은 오토바이와 관련 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박은진 공유를위한창조 대표는 “죽어가는 동네에 웬 술집이냐고 의아해할 수 있었을 텐데 바가 들어선 뒤 찾는 사람들이 많아 장사가 잘 됐었다”며 “회사명처럼 또 다른 가능성과 기회를 보고 다음 청년들에게도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은 다른 업종을 운영 중이다”고 전했다.

경남 함양군 ‘숲속 언니들’ 먹케이션 프로그램에 참여자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박세원 대표 제공

◆빈집을 자원으로 마을에 활력 넣는다

경남 함양군 함양읍에서는 빈집 두 채가 마을 풍경을 바꿨다. 원래 살던 할머니가 병세가 악화하면서 집이 비었고 그곳에 ‘고마워, 할매’가 들어섰다. 주변에 눈에 띄는 관광지는 없지만 숙박과 체험으로 방문객들 눈길을 사로잡았다. 제철 식재료와 농촌 체험을 결합한 ‘먹케이션’ 프로그램은 수도권 청년들을 끌어들이며 빈집이 지역 관광과 청년 정착의 가능성을 여는 계기가 됐다. 아침 밥상, 여름 계곡 체험, 가을 지리산 도보여행 등 계절마다 다른 시골 경험을 제공한다. 경기도에서 찾아왔다는 한 체험객은 “아이들에게 옛날 할머니 집에서 지냈던 추억을 선사했다”며 “동네 할머니들이 키운 제철 음식 등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엄지를 추켜세웠다.

고마워할매에는 지난 2년간 600명 정도가 다녀갔다. 이 중 수도권에서 온 이들이 90% 이상이다. 올해는 숙박 매출액 목표는 1억원이다. 고마워할매를 운영하는 박세원 ‘숲속의 언니들’ 대표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함양의 가능성을 보고 뜻이 맞는 3명이 모여 농업회사 법인을 설립해 빈집을 활용했다”며 “옛 할머니 집에서의 추억을 선사하고 몸과 마음이 쉬는 충전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전북 군산시 월명동의 ‘술 익는 마을’ 목욕탕. 조권능 대표 제공

전북 군산시 월명동의 ‘술 익는 마을’은 일본식 옛집을 양조장과 체험공간으로 바꾸며 술을 핵심 테마로 삼았다. 제조?체험?판매를 결합해 지속성과 확장성을 키웠다. 이곳의 이색공간 중 하나는 ‘개인 목욕탕’이다. 개인의 취향에 맞는 가벼운 술과 옛 목욕탕 분위기를 즐기는 체험공간으로 꽤 인기다. 조권능 술익는마을 대표는 “2019년 영화 재래시장에서 빈 점포를 활용해 카페 등을 운영하다가 2022년부터 빈집을 활용했다”며 “시가 근대거리를 조성하며 일본식 가옥을 정비해 빈 건물을 시에서 임대해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단순한 카페나 식당은 유행에 따라 쉽게 소모되지만 술은 제조 체험부터 판매, 시음까지 다양한 행사 구성으로 관광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충북 충주시 관아골의 ‘세상상회’는 10년 넘게 방치된 폐가(일본식 건물)를 카페와 공연장으로 바꾸며 골목을 되살렸다. 옥상 공연과 협동조합으로 외지 청년 창업자들을 끌어들였고 성내동은 연간 5만명이 찾는 명소로 변모했다.

충북 충주시 관아골 ‘세상상회’ 풍경. 세상상회 제공

◆‘빈집’ 제도보다 사람이 먼저 움직였다

전국적으로 빈집과 빈 건물 비율은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어촌에서는 고령화로 주민이 세상을 떠나거나 도시로 이주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게 주된 원인이다. 도농복합도시는 도시 쪽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농촌은 비어 가고 구도심마저 쇠퇴하는 이중구조가 나타난다. 도시도 빈집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신도시 개발에 따라 인구 유출과 상권 붕괴 등 원도심 쇠퇴로 빈집이 늘어난다.

빈집은 지역 환경 저해와 붕괴 위험, 우범 지대 전락 등의 문제를 안긴다. 빈집 문제를 더 꼬이게 하는 건 소유자의 심리다. 한국 사회 특유의 부동산 집착이 빈집 매매를 가로막는다. 팔지 않으니 관리가 안 되고 팔리지 않으니 방치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경남 거제시 장승포 ‘밗’ 전경. 강승우 기자

빈집 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해 온 박창용 한양대 사회혁신 겸임교수는 민간을 적극 활용해 빈집과 유휴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 교수는 “빈집을 줄이는 것에 정책 중심을 두면 실적에 치중한 나머지 지속가능한 활용법이 나오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즉,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활용 전략을 정하는 ‘하향식’이 되어선 안 되는데 이때 필요한 매개자가 바로 로컬크리에이터, 즉 지역 가치 창출가다.

박 교수에 따르면 로컬크리에이터는 빈집이나 폐창고 같은 유휴공간을 재구성하고 지역 특산품을 상품화해 지역 경제의 자생력을 키우는 역할을 맡는다. 외부인은 물론 지역주민의 자발적 참여와 소통을 끌어내면서 공동체 회복과 세대 간 연대를 강화하는 매개 역할을 담당한다. 박 교수는 “로컬크리에이터가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지역 고유성의 재발견과 문화의 창의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빈집관리사가 관리하는 부산 북구의 한 주택 내부 모습. 한국빈집관리협회 제공

(중략)

빈집은 다른 위기의 전초전을 예고한다. 초고령사회와 도시 집중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전국 229개 지자체 중 107곳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지정된 상태다. 지역 소멸은 행정 단위의 소멸에 그치지 않는다. 인구 감소와 생활 기반 붕괴, 의료·식품 접근성 저하로 이어지는 복합 위기다. 빈집이 늘어날수록 생활 기반은 허물어지고 남은 주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는 등 지역이 텅 비는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 및 생존의 문제다. 박 교수는 “빈집 문제는 식품 사막화 같은 식생활 위기로 비화할 수 있다”며 “빈집 정책이 청년층 유입을 넘어 중장년층까지 감안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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